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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 스타벅스도 무릎 꿇었다... 중국에서 벌어진 '550원 커피' 전쟁

 중국 커피 시장에서 가격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프리미엄 브랜드로 알려진 스타벅스가 음료 가격 인하를 결정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중국 스타벅스는 프라푸치노, 아이스티, 티 라떼 등 비 커피 음료 12종의 가격을 평균 5위안(약 940원) 낮추기로 했으며, 일부 메뉴는 최대 23위안(약 4300원)까지 가격이 인하될 예정이다.

 

스타벅스 측은 이번 가격 인하의 배경으로 '오전에는 커피, 오후에는 비커피' 전략을 내세웠다. 비커피 음료 강화를 통해 오후 시간대 고객 유치를 확대하겠다는 의도다. 그러나 이러한 움직임은 중국 내수 부진과 저가 커피 브랜드들의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인해 스타벅스가 고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결정으로 해석된다.

 

중국은 스타벅스에게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시장이다. 2024년 1분기 기준 스타벅스는 중국 전역에 7,600개가 넘는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실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올해 1분기 스타벅스의 중국 매출액은 7억 4,36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 증가에 그쳤다. 더욱 우려되는 점은 신규 매장 확장 효과를 제외한 1년 이상 운영된 매장의 매출액(동일 매장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6% 감소했다는 사실이다.

 


블룸버그는 이번 가격 인하 결정에 대해 "프리미엄 전략을 유지하던 스타벅스가 공식적으로 음료 가격 인하를 홍보하는 것은 이례적"이라고 평가했다. 이는 중국 커피 시장의 경쟁 심화가 얼마나 스타벅스를 압박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중국 커피 시장은 최근 수년간 폭발적인 성장과 함께 극심한 가격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루이싱커피와 코티 커피 같은 중국 토종 브랜드들이 저가 전략으로 시장을 공략하면서 커피 한 잔 가격이 2.9위안(약 550원)까지 하락했다. 여기에 징둥닷컴과 알리바바 같은 IT 대기업들이 배달 서비스 시장에 진출하면서 배달비 인하 경쟁까지 가세해, 일부 브랜드의 커피는 배달비를 포함해도 3위안(약 565원) 미만에 판매되는 극단적인 사례까지 등장했다.

 

이러한 저가 경쟁 속에서 프리미엄 이미지를 내세워온 스타벅스의 가격 인하 결정은 중국 커피 시장의 경쟁이 얼마나 치열해졌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스타벅스가 중국 시장에서 생존하기 위해 기존 전략을 수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음을 시사한다. 중국의 커피 시장은 앞으로도 브랜드 간 가격 경쟁과 서비스 경쟁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당신이 몰랐던 '항일의 성지'…이 섬에만 365일 태극기가 휘날린다

표지석처럼, 이곳은 인구 2천 명 남짓한 작은 섬에서 무려 89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저항의 성지다. 분단 이후 '빨갱이 섬'이라는 오명 속에 신음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365일 태극기가 휘날리는 민족의 화산으로 자리 잡은 소안도의 뜨거운 역사는 등대와 학교, 그리고 비석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그 저항 정신의 첫 불꽃은 1909년 외딴섬의 등대에서 타올랐다. 동학군 출신 이준하 등 6인은 일본인들이 세운 당사도 등대를 습격해 시설을 파괴하고 일본인들을 살해했다. 이는 단순한 살인이 아니라, 모든 것을 빼앗긴 조선인의 독립 의지를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었다. 이로 인해 소안도 주민 2천여 명 중 800명이 일제의 감시 대상인 '불량선인'으로 낙인찍혔지만, 저항은 결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이 사건은 소안도의 항일 운동에 거대한 불을 지폈다.소안도의 저항은 무력 투쟁에만 그치지 않았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강탈당한 토지 소유권을 되찾기 위해 13년간의 끈질긴 법정 투쟁을 벌여 마침내 승소했다. 주민들은 이를 기념해 1923년 '사립 소안학교'를 세웠다. 이 학교는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니라, 민족 교육을 통해 항일 인재를 길러내는 독립운동의 핵심 근거지였다. 교사와 학생들은 비밀결사를 조직하며 항일 운동의 최전선에 섰고, 이는 결국 일제에 의해 강제 폐교되는 비운을 맞았지만, 그 정신만큼은 꺾을 수 없었다.이 모든 투쟁의 중심에는 송내호 같은 뛰어난 지도자가 있었다. 교사였던 그는 무장투쟁 단체를 조직하고 사회주의 사상을 받아들이며 시대의 모순을 해결하고자 했다. 그의 형제 중 셋이 독립운동에 투신했는데, 어머니의 간절한 만류에 순사가 된 막내아들의 묘비에만 유일하게 태극기 문양이 없다는 사실은 시대의 아픔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양반 가문이 없어 신분 갈등이 적었고, 일찍부터 외부 세계에 눈떴으며, 교육열이 높았던 소안도의 독특한 환경은 이 작은 섬이 국내외를 아우르는 강력한 저항의 중심이 될 수 있었던 배경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