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교실 점령한 댓글부대..리박스쿨 논란에 교육부 ‘직접 조사’

 교육부가 극우 성향으로 논란이 된 ‘리박스쿨’이 늘봄학교 프로그램 운영에 참여한 정황과 관련해 자격증 전수조사에 이어 별도의 신고센터 운영을 검토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리박스쿨과 같은 단체가 발급한 자격증을 근거로 강사 활동을 해온 사례에 대한 실태 파악을 강화하고, 학부모와 학생 등 수요자들의 직접적인 제보를 통해 교육의 중립성 침해 여부를 파악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일부 시·도교육청은 민원 부담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어 교육부 단독으로 운영하는 방안도 고려되고 있다.

 

10일 교육 당국에 따르면 교육부는 리박스쿨을 포함한 일부 민간 단체와 관련된 늘봄학교 강사 운영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신고센터 설치 방안을 시·도교육청과 협의 중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강사가 수업 중 편향적인 발언을 했다고 하더라도 이를 객관적으로 검증하기 어려운 만큼, 학부모나 학생 등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는 창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수업 중 정치적 편향이나 교육 중립성 위반 가능성을 신속하게 감지하고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이 미비하다는 점에서, 신고센터가 보완책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신고센터 설치 논의는 최근 리박스쿨이 늘봄학교 강사 채용 과정에서 부적절한 행위를 했다는 언론 보도 이후 본격화됐다. 해당 보도에 따르면 리박스쿨 측은 '늘봄학교 자격증 발급'을 미끼로 ‘자손군’이라는 댓글팀을 조직하고, 이들이 방과후 수업 강사로 활동하게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자손군은 ‘자유 손가락 군대’의 줄임말로, 온라인 여론전에 참여하는 조직으로 알려져 있다. 해당 의혹이 제기되자 교육부는 자격증 실태 전수조사에 착수했다.

 

조사 대상은 늘봄학교 강사들이 제출한 자격증 가운데 리박스쿨 외에도 글로리 사회적협동조합, 한국늘봄교육연합회, 우남네트워크, 프리덤칼리지학회 등 5개 기관이 발급한 총 31종의 자격증이다. 교육부는 이들 자격증을 소지한 강사들의 수업에 대해 1차적으로 자격 유효성 여부를 확인하고, 이후에는 학교별 수요자 만족도 조사, 공개수업 및 모니터링, 컨설팅 등을 통해 교육 내용의 중립성 위반 여부를 2차적으로 점검할 방침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모든 현장을 직접 조사하기에는 행정력 한계가 있는 만큼, 제보를 받을 수 있는 온라인 신고센터 운영이 보완책으로 제시되고 있다. 교육부는 이를 통해 민감한 사항에 대해 학부모와 교사의 직접적인 의견을 청취하고, 정기적 모니터링 자료로 활용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일부 시·도교육청은 신고센터 추가 설치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현재도 국민신문고 등을 통해 늘봄학교와 관련한 민원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데, 별도의 채널이 더해질 경우 행정적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시·도교육청들은 “기존 민원창구만으로도 처리 역량이 벅찬 상황에서 또 다른 채널을 개설하면 오히려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의견을 교육부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교육부는 시·도교육청이 협조하지 않을 경우, 자체적으로 독립된 창구를 운영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시·도교육청과 협의는 계속 진행 중이지만, 협조가 여의치 않을 경우 교육부 차원에서 신고센터를 운영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늘봄학교는 초등학교 1~2학년을 대상으로 방과후 교육을 공교육 내에서 확장하기 위해 도입된 프로그램으로, 다양한 민간단체와의 협업을 통해 강사를 운영해왔다. 하지만 자격 검증 절차나 교육 중립성 논란이 이어지면서, 이번 리박스쿨 사태를 계기로 보다 체계적인 관리 체계와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높아지고 있다. 교육계 안팎에서는 이번 신고센터 논의가 늘봄학교의 근본적인 운영 방식을 재검토하는 계기가 될지 주목하고 있다.

 

당신이 몰랐던 '항일의 성지'…이 섬에만 365일 태극기가 휘날린다

표지석처럼, 이곳은 인구 2천 명 남짓한 작은 섬에서 무려 89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저항의 성지다. 분단 이후 '빨갱이 섬'이라는 오명 속에 신음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365일 태극기가 휘날리는 민족의 화산으로 자리 잡은 소안도의 뜨거운 역사는 등대와 학교, 그리고 비석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그 저항 정신의 첫 불꽃은 1909년 외딴섬의 등대에서 타올랐다. 동학군 출신 이준하 등 6인은 일본인들이 세운 당사도 등대를 습격해 시설을 파괴하고 일본인들을 살해했다. 이는 단순한 살인이 아니라, 모든 것을 빼앗긴 조선인의 독립 의지를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었다. 이로 인해 소안도 주민 2천여 명 중 800명이 일제의 감시 대상인 '불량선인'으로 낙인찍혔지만, 저항은 결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이 사건은 소안도의 항일 운동에 거대한 불을 지폈다.소안도의 저항은 무력 투쟁에만 그치지 않았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강탈당한 토지 소유권을 되찾기 위해 13년간의 끈질긴 법정 투쟁을 벌여 마침내 승소했다. 주민들은 이를 기념해 1923년 '사립 소안학교'를 세웠다. 이 학교는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니라, 민족 교육을 통해 항일 인재를 길러내는 독립운동의 핵심 근거지였다. 교사와 학생들은 비밀결사를 조직하며 항일 운동의 최전선에 섰고, 이는 결국 일제에 의해 강제 폐교되는 비운을 맞았지만, 그 정신만큼은 꺾을 수 없었다.이 모든 투쟁의 중심에는 송내호 같은 뛰어난 지도자가 있었다. 교사였던 그는 무장투쟁 단체를 조직하고 사회주의 사상을 받아들이며 시대의 모순을 해결하고자 했다. 그의 형제 중 셋이 독립운동에 투신했는데, 어머니의 간절한 만류에 순사가 된 막내아들의 묘비에만 유일하게 태극기 문양이 없다는 사실은 시대의 아픔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양반 가문이 없어 신분 갈등이 적었고, 일찍부터 외부 세계에 눈떴으며, 교육열이 높았던 소안도의 독특한 환경은 이 작은 섬이 국내외를 아우르는 강력한 저항의 중심이 될 수 있었던 배경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