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이슈

10시간 마라톤 공연, 2년에 걸친 5부작…'비극 끝판왕'이 명동에 나타났다

 고대 그리스 신화 속 테베 왕가의 비극을 현대적 시선으로 파헤치는 대담한 시도가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에서 시작됐다. 독일의 저명한 극작가 롤란트 쉼멜페니히가 집필한 5부작 '안트로폴리스'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 거대한 프로젝트는 10일, 윤한솔 연출의 1부 '프롤로그/디오니소스'를 시작으로 2년에 걸친 대장정의 막을 올렸다. 원작이 독일 함부르크에서 3일간 10시간에 걸쳐 공연되며 현대 사회의 권력, 세대 갈등, 도덕적 딜레마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 극찬받았던 만큼, 한국 무대에서는 어떻게 구현될지 초미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작품은 단순한 고전의 재현을 넘어, 신화라는 거울을 통해 지금 우리 사회의 민낯을 들여다보려는 야심 찬 기획이다.

 

그 서막을 연 1부 '프롤로그/디오니소스'는 18명의 배우가 무대를 가득 채우며 집단적 광기가 어떻게 개인과 사회를 파멸로 이끄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자신의 신성을 부정하는 테베의 왕 펜테우스를 벌하는 디오니소스의 이야기를 통해, 현대 사회에 만연한 폭력성과 야만성을 거침없이 끄집어낸다. 연출을 맡은 윤한솔은 "요즘 사회적으로 상처에 대해 치유와 구원을 너무 쉽게 이야기하는데, 이것이 멜로드라마틱하게 느껴졌다"며 의도적으로 따뜻한 위로나 쉬운 결말을 피했음을 밝혔다. 그는 비극이라는 장르의 본질에 충실하게, 파멸이라는 결말로 치닫기 직전의 날것 그대로의 상태를 관객 앞에 펼쳐 보이며 '지금 우리에게 비극이란 무엇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11월에 바통을 이어받을 2부 '라이오스'는 1부와는 180도 다른 매력을 예고하며 기대감을 증폭시킨다. 오이디푸스의 아버지이지만 상대적으로 덜 조명받았던 인물 '라이오스'의 서사를 다루는 이 작품은 배우 단 한 명이 무대를 이끌어가는 1인극이다. 무려 18개의 역할을 혼자 소화해야 하는 이 어려운 임무는 배우 전혜진이 맡았다. 김수정 연출은 "배우 전혜진은 미디어를 통해 알려진 것 외에 훨씬 더 다양한 모습을 가진 배우"라며 "연습 과정에서 보여준 경이로울 정도의 다면적인 모습에 관객들도 큰 재미를 느낄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특히 이 작품은 독일에서 올해의 여배우, 연출, 작품상을 휩쓴 검증된 수작이어서 전혜진이 보여줄 새로운 연기 변신에 더욱 이목이 집중된다.

 

결국 '안트로폴리스' 5부작은 단순한 연극 시리즈를 넘어, 우리 시대의 관객에게 던지는 하나의 거대한 질문 덩어리다. 독일 초연 당시 10시간이 넘는 마라톤 공연이라는 파격적인 형식으로 고대 신화가 어떻게 현대 사회의 가장 깊은 곳을 찌를 수 있는지 증명했다. 국립극단이 2년에 걸쳐 선보일 이 야심 찬 프로젝트가 한국 연극계에 어떤 파장을 일으킬지, 그리고 관객들에게 어떤 성찰의 시간을 안겨줄지 지켜볼 일이다. 명동예술극장에서 시작된 이 거대한 비극의 소용돌이는 이미 많은 이들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며 조용한 흥행을 예고하고 있다.

 

세종대왕님도 흐뭇해할 '한글놀이터', 드디어 세종시에 상륙

종시문화관광재단과의 협력을 통해 세종문화예술회관에 '한글놀이터 세종관'을 새롭게 조성하고, 12일부터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이번 세종관 개관은 수도권에 집중된 우수 문화 콘텐츠를 지역으로 확산하는 중요한 첫걸음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특히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이름을 딴 세종시에 첫 지역 거점이 마련되면서, 아이들이 도시의 정체성과 한글의 가치를 함께 배우는 교육의 장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한글놀이터'는 '한글 공부'라는 딱딱한 학습의 개념을 완전히 뒤집는 신개념 체험 공간이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한글을 외우고 쓰는 대신, 온몸으로 부딪히고 뛰어놀며 한글의 원리를 자연스럽게 체득한다. 세종관은 이러한 기본 취지에 세종시의 지역적 특색을 녹여 한층 더 특별한 공간으로 꾸며졌다. 관람객들은 한글 자모음의 모양을 본떠 만든 '기역통통', '니은통통' 등 7종의 귀여운 캐릭터와 함께 '말랑통통 마을'의 비밀 열쇠를 찾아 나서는 흥미진진한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자음과 모음의 형태를 닮은 구조물을 오르내리고, 소리의 원리를 이용한 놀이를 즐기며 한글의 제자 원리와 확장성을 어렵지 않게 이해하게 된다.이번 세종관의 성공적인 개관은 중앙정부 기관과 지방자치단체 간의 성공적인 협력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국립한글박물관이 수년간의 운영 노하우를 담아 개발한 핵심 콘텐츠를 제공하고, 세종시와 세종시문화관광재단이 지역의 특색을 반영한 공간 조성과 운영을 맡아 시너지를 창출했다. 강정원 국립한글박물관장은 "서울에서만 즐길 수 있었던 한글놀이터를 지역 주민들도 향유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고 소감을 밝히며, 이번 세종관을 시작으로 한글 교육 문화의 전국적인 확산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국립한글박물관은 이번 세종관 개관을 발판 삼아 내년부터는 전국 지자체를 대상으로 공모를 진행, 지역 거점별로 한글놀이터를 더욱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이는 전국의 더 많은 어린이가 사는 곳 가까이에서 양질의 한글 체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앞으로 3년간 상설 운영될 '한글놀이터 세종관'이 세종시를 넘어 충청권의 대표적인 어린이 문화 명소로 자리 잡고, 미래 세대에게 우리 글 한글의 소중함과 과학적 우수성을 알리는 전초기지 역할을 톡톡히 해낼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