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산업

외국인은 팔고 개미는 사고…'달러 블랙홀'에 갇힌 대한민국, 환율 1500원 초읽기

 외환당국이 연일 총력 방어에 나서고 있지만, 원·달러 환율 1500원 시대의 공포는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다. 지난 14일, 장 초반 1475원선까지 치솟으며 연고점을 위협하던 환율은 당국의 강력한 구두개입과 실개입이 있고 나서야 겨우 1450원대로 내려앉았다. 코스피 지수가 3% 넘게 폭락하고 외국인이 2조 6000억 원이 넘는 주식을 내다 파는 최악의 조건 속에서, 사실상 당국이 온몸으로 환율 급등을 막아낸 형국이다. 이는 시장의 힘에 의한 자연스러운 안정이 아니라, 인위적인 조치로 쌓아 올린 위태로운 평화에 불과하다는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당국이 가용 수단을 총동원해 환율 방어 의지를 천명했지만, 시장의 근본적인 원화 약세 기대 심리를 꺾기에는 역부족인 모습이다.

 

문제의 핵심은 구조적인 달러 수급 불균형이다. 미국 주식 투자에 나선 '서학개미'의 달러 매수 행렬은 끝없이 이어지는 반면,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 증시를 외면하며 원화 자산을 매도해 달러로 바꿔 떠나고 있다. 여기에 기업들의 대미 투자 부담까지 더해져 달러는 한국 시장에서 일방적으로 빠져나가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기대를 모았던 한미 정상회담 공동 팩트시트 역시 이러한 흐름을 되돌릴 만한 결정적 한 방이 되지 못했다. 기업의 연간 대미 투자 조달액 상한선이 명시되며 불확실성이 일부 해소됐지만, 전문가들은 이것이 환율 하락을 이끌 재료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달러가 계속해서 유출되는 한, 당국의 개입만으로는 추세를 바꾸기 어렵다는 비관론이 팽배하다.

 


결국 당국이 기댈 곳은 '국민연금'이라는 마지막 카드뿐이다. 정부는 주요 수출기업들과의 면담을 통해 달러 매도를 유도하는 한편, 해외투자 비중이 막대한 국민연금을 향해 구원 요청 신호를 보내고 있다. 국민연금은 해외자산의 최대 15%, 약 115조 원에 달하는 규모의 환헤지가 가능해, 마음만 먹으면 시장에 상당한 규모의 달러를 공급할 수 있다. 시장에서는 환율이 1480원 수준에 근접할 경우, 국민연금이 전략적 환헤지에 나서 환율 상단을 찍어 누를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게 제기된다. 이는 당국이 환율의 마지노선으로 여기는 심리적 저항선이 1480원대임을 시사하는 동시에, 그만큼 시장 상황이 절박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하지만 국민연금의 등판조차 '언 발에 오줌 누기'에 그칠 것이라는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코로나19 이후 폭발적으로 증가한 개인의 해외투자와 기업의 투자 수요로 인해 달러 유출 압력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세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의 환헤지가 발동하더라도 환율의 상승 추세를 꺾고 하락세로 전환시키기는 어려우며, 단지 상승 속도를 조절하는 역할에 그칠 것이라고 분석한다. 결국 올해 안에 1500원 선을 넘지 않더라도 구조적인 수급 불균형이 해소되지 않는 한 내년에는 충분히 도달 가능한 시나리오라는 암울한 전망이 나온다. 당국이 1500원이라는 숫자를 막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동안, 진짜 변수는 미국 연준의 통화정책과 같은 대외적인 환경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日軍이 총 쏘자 ‘피땀’ 흘렸다는 비석…방치된 이순신 최후의 보루에 가보니

던 이유는 단 하나, 수백 척의 왜군에 맞서 싸워야 할 조선 수군의 전력이 고작 13척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전라도 사람을 모조리 죽여 씨를 말리라"는 잔혹한 명령 아래 전라도 전역은 초토화되고 있었고, 이순신은 함대를 보존하고 재건할 안전한 근거지가 절실했다. 법성포, 고군산도를 전전하고 우수영으로 돌아왔으나 이미 폐허가 된 뒤였다. 시야 확보가 어렵고 육지와 멀어 전략적으로 부적합했던 안편도를 거쳐 마침내 도달한 곳이 바로 고하도였다. 이곳은 영산강 하구에 위치해 군량 조달이 용이하고, 북서풍을 막아주는 천혜의 지형에 배를 만들 소나무까지 풍부해 수군 재건을 위한 최적의 장소였다.고하도에 닻을 내린 이순신은 곧바로 기적과도 같은 재건 작업에 착수했다. 도착하자마자 집과 군량 창고를 짓고, 길이 1km, 높이 2m의 석성을 쌓아 방어 태세를 갖췄다. 가장 놀라운 것은 군량미 확보와 함대 증강이었다. 피란민들의 배에 실린 곡식을 군량미로 바꾸는 ‘해로통행첩’ 제도를 시행해 단 열흘 만에 1만 석의 군량미를 비축했다. 동시에 백성들을 모아 구리와 쇠로 대포를 만들고, 섬의 풍부한 소나무를 베어 40여 척의 전선을 건조했다. 그 결과 13척에 불과했던 함대는 53척으로 늘어났고, 흩어졌던 장수와 병사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1천 명이던 병력은 2천 명으로 불어났다. 원균의 칠천량 패전으로 궤멸 직전까지 갔던 조선 수군이 불과 100여 일 만에 다시금 막강한 위용을 갖추게 된 것이다.오늘날 고하도는 이순신의 처절했던 재건의 역사 위에 화려한 현대적 관광 시설을 덧입었다. 케이블카를 타고 유달산 정상을 넘어서면 목포 앞바다와 해안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섬에 내리면 13척의 판옥선을 격자 모양으로 쌓아 올린 독특한 형태의 전망대가 방문객을 맞이하고, 용머리 해안을 따라서는 1818m 길이의 아름다운 해상데크가 쪽빛 바다 위로 이어진다. 가을이면 해안 절벽을 수놓는 노란 들국화의 군락은 탄성을 자아낸다. 사람들은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사진을 찍고 둘레길을 걸으며 여유를 만끽하지만, 이곳이 패배의 벼랑 끝에서 조선의 운명을 다시 일으켜 세운 역사의 심장부였음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이처럼 고하도는 아름다운 순례길 이전에 반드시 기억해야 할 역사의 현장이지만, 그 가치가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고 있다. 이순신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1722년 세워진 기념비와 모충각이 쓸쓸히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 당시 수군의 심장이었던 삼도수군통제영은 복원되지 못한 채 그 터만 남아있다. 일제강점기 일본군이 총을 쏘자 비석이 몇 달간 땀을 흘렸다는 일화가 전해질 만큼 민족의 한이 서린 곳이지만, 대부분의 방문객은 둘레길만 둘러볼 뿐 이곳을 스쳐 지나간다. 노량해전 승리의 발판을 마련한 재기의 땅, 고하도 삼도수군통제영의 조속한 복원을 통해 이곳이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모든 국민이 찾는 역사의 순례길로 거듭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