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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재산 100%는 딸에게"…홍진경, 방송 중 유언 남기자 PD가 던진 선 넘은 한마디

 방송인 홍진경이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마음의 번아웃을 고백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여정을 공개했다. 최근 자신의 유튜브 채널 '공부왕 찐천재'를 통해 공개된 영상에서 홍진경은 평소와 다른 낮은 텐션으로 등장해 팬들의 우려를 샀다. 담당 PD가 "텐션을 올리라", "우울한 것 하지 말라"며 분위기를 띄우려 노력했지만, 그녀의 지친 기색은 역력했다. 결국 홍진경은 "살기 위해" 떠난다며, 개그맨 고명환이 살고 있는 욕지도로 향하는 여정을 시작했다. 그녀는 과거 큰 교통사고로 죽을 고비를 넘긴 뒤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을 얻게 된 고명환을 만나기 위해 먼 길을 마다하지 않는다며 이번 여정의 절박한 이유를 설명했다.

 

여정 내내 홍진경은 자신의 과거를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시청자들의 마음을 울렸다. 그녀는 자신 역시 "죽을 고비를 세 번이나 넘겼다"고 충격적인 고백을 이어갔다. 뜨거운 한증막에서 잠이 들어 혼수상태에 빠질 뻔했던 아찔한 순간, 암 투병으로 힘들었던 시기, 그리고 어린 딸 라엘을 업고 일본에서 차도를 건너려다 찰나의 머뭇거림 덕에 큰 사고를 피했던 경험까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순간들을 담담하게 회상했다. 이는 그녀가 현재 겪고 있는 심리적 어려움이 단순한 기분 탓이 아님을 짐작게 하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방송은 시종일관 무겁게만 흐르지 않았다. 홍진경의 진솔한 고백에 담당 PD는 "세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는데 뭐가 달라졌냐"는 허를 찌르는 '돌직구' 질문을 던졌다. 이에 홍진경은 잠시 머뭇거리다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고 답하며 웃음을 터뜨려, 무거웠던 분위기를 단숨에 반전시켰다. 이처럼 그녀의 영상은 삶의 깊은 고뇌와 특유의 유머 감각이 기묘하게 어우러지는 '단짠' 매력을 선보였다. 심지어 PD가 "자꾸 우울하게 말하면 임종 브이로그를 찍겠다"고 농담을 던지자, 홍진경은 진지하게 자신의 장례식은 성북동 성당에서 치르고 싶다는 구체적인 바람을 밝히기도 했다.

 

이들의 '티키타카'는 재산 문제로까지 이어졌다. PD가 장례식장으로 언급된 성당의 주차 문제를 지적하며 웃음을 유발한 데 이어, 전 재산을 누구에게 줄 것이냐는 질문을 던졌다. 홍진경이 망설임 없이 "딸 라엘에게 100% 줘야 한다"고 답하자, PD는 "성당에 기부할 줄 알았다"며  짓궂게 공격했다. 이에 홍진경은 "물려줄 돈도 없다"며 손사래를 치는 모습으로 마무리됐다. 이처럼 홍진경의 영상은 '조울증 블로그'라는 자극적인 제목 아래,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유쾌한 수다로 풀어내며 삶의 아이러니를 보여주는 독특한 콘텐츠로 남았다.

 

日軍이 총 쏘자 ‘피땀’ 흘렸다는 비석…방치된 이순신 최후의 보루에 가보니

던 이유는 단 하나, 수백 척의 왜군에 맞서 싸워야 할 조선 수군의 전력이 고작 13척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전라도 사람을 모조리 죽여 씨를 말리라"는 잔혹한 명령 아래 전라도 전역은 초토화되고 있었고, 이순신은 함대를 보존하고 재건할 안전한 근거지가 절실했다. 법성포, 고군산도를 전전하고 우수영으로 돌아왔으나 이미 폐허가 된 뒤였다. 시야 확보가 어렵고 육지와 멀어 전략적으로 부적합했던 안편도를 거쳐 마침내 도달한 곳이 바로 고하도였다. 이곳은 영산강 하구에 위치해 군량 조달이 용이하고, 북서풍을 막아주는 천혜의 지형에 배를 만들 소나무까지 풍부해 수군 재건을 위한 최적의 장소였다.고하도에 닻을 내린 이순신은 곧바로 기적과도 같은 재건 작업에 착수했다. 도착하자마자 집과 군량 창고를 짓고, 길이 1km, 높이 2m의 석성을 쌓아 방어 태세를 갖췄다. 가장 놀라운 것은 군량미 확보와 함대 증강이었다. 피란민들의 배에 실린 곡식을 군량미로 바꾸는 ‘해로통행첩’ 제도를 시행해 단 열흘 만에 1만 석의 군량미를 비축했다. 동시에 백성들을 모아 구리와 쇠로 대포를 만들고, 섬의 풍부한 소나무를 베어 40여 척의 전선을 건조했다. 그 결과 13척에 불과했던 함대는 53척으로 늘어났고, 흩어졌던 장수와 병사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1천 명이던 병력은 2천 명으로 불어났다. 원균의 칠천량 패전으로 궤멸 직전까지 갔던 조선 수군이 불과 100여 일 만에 다시금 막강한 위용을 갖추게 된 것이다.오늘날 고하도는 이순신의 처절했던 재건의 역사 위에 화려한 현대적 관광 시설을 덧입었다. 케이블카를 타고 유달산 정상을 넘어서면 목포 앞바다와 해안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섬에 내리면 13척의 판옥선을 격자 모양으로 쌓아 올린 독특한 형태의 전망대가 방문객을 맞이하고, 용머리 해안을 따라서는 1818m 길이의 아름다운 해상데크가 쪽빛 바다 위로 이어진다. 가을이면 해안 절벽을 수놓는 노란 들국화의 군락은 탄성을 자아낸다. 사람들은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사진을 찍고 둘레길을 걸으며 여유를 만끽하지만, 이곳이 패배의 벼랑 끝에서 조선의 운명을 다시 일으켜 세운 역사의 심장부였음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이처럼 고하도는 아름다운 순례길 이전에 반드시 기억해야 할 역사의 현장이지만, 그 가치가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고 있다. 이순신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1722년 세워진 기념비와 모충각이 쓸쓸히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 당시 수군의 심장이었던 삼도수군통제영은 복원되지 못한 채 그 터만 남아있다. 일제강점기 일본군이 총을 쏘자 비석이 몇 달간 땀을 흘렸다는 일화가 전해질 만큼 민족의 한이 서린 곳이지만, 대부분의 방문객은 둘레길만 둘러볼 뿐 이곳을 스쳐 지나간다. 노량해전 승리의 발판을 마련한 재기의 땅, 고하도 삼도수군통제영의 조속한 복원을 통해 이곳이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모든 국민이 찾는 역사의 순례길로 거듭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