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산업

APEC 회의서 터져 나온 불만, 국세청이 '파격 대책'으로 응답했다!

 내년 1월 1일부터 우리 술, 즉 전통주를 둘러싼 낡은 규제의 빗장이 대거 풀리면서 관련 산업에 새로운 활력이 기대된다. 국세청은 주류 산업의 성장을 가로막는 현장의 걸림돌을 제거하기 위해 그동안 수렴한 업계의 애로사항을 바탕으로 한 파격적인 제도 개선안을 마련, 새해부터 본격 시행에 들어간다. 이번 조치의 핵심은 소비자와의 접점을 획기적으로 늘리고, 생산자들의 불필요한 비용 부담을 대폭 줄여주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전통주 시음 행사에 대한 규제 완화다. 지금까지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주관하는 홍보 행사에서 주류 제조자나 수입업자만이 시음주를 제공할 수 있었지만, 앞으로는 해당 행사에서 전통주를 판매하는 '소매업자'도 자유롭게 소비자들에게 시음주를 제공하며 제품을 홍보할 수 있게 된다.

 

이번 시음 행사 규제 완화는 지난 10월 경주에서 열렸던 '2025 APEC CEO 서밋-와인&전통주 박람회'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제기된 현장의 목소리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인지도가 낮은 전통주의 경우, 소비자가 직접 맛을 보고 경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홍보 수단이라는 업계의 절실한 요구가 정책에 반영된 것이다. 국세청은 단순히 시음 주체를 확대하는 것을 넘어, 제공할 수 있는 시음주의 물량 한도까지 늘려 소비자들이 보다 다채로운 우리 술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할 계획이다. 이는 그동안 판로 개척에 어려움을 겪던 소규모 양조장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소식이며, 소비자 입장에서는 전국의 숨겨진 명주(名酒)를 발견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게 될 전망이다.

 


생산 단가와 직결되는 납세협력비용 절감 방안도 구체화되었다. 국세청은 불법 가공이나 탈세를 막기 위해 특정 주류에 의무적으로 부착해온 납세증명표지를 전통주에 한해 대폭 면제하기로 했다. 주세 감면 혜택을 받는 수량인 발효주류 1,000㎘, 증류주류 500㎘까지는 납세증명표지를 부착하지 않아도 되도록 개선하여 생산자들의 행정적, 비용적 부담을 직접적으로 덜어준다. 특히 사업 초기 정착에 어려움을 겪는 소규모주류 면허 사업자를 위한 맞춤형 지원책도 마련되었다. 신규 면허를 취득한 소규모주류 제조자는 면허 취득일 다음 분기까지 납세증명표지 부착 의무를 완전히 면제받게 되는데, 이를 통해 연간 약 90여 개의 신규 업체가 실질적인 비용 절감 혜택을 누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 밖에도 주류 유통 시스템 전반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 개선이 함께 추진된다. 지금까지 종이 문서나 영수증 형태로만 발급 가능했던 주류판매계산서는 전자문서로도 작성할 수 있도록 디지털 전환의 길이 열린다. 또한, 지역별 주류 유통 수요를 보다 현실적으로 반영하기 위해 종합주류도매업 면허의 신규 산정 방식을 개선한다. 기존에는 주류소비량과 인구수 기준의 '평균값'으로 면허 수를 산정했지만, 앞으로는 둘 중 '더 큰 값'을 기준으로 삼아 실제 유통 수요가 많은 지역에 면허가 원활히 공급될 수 있도록 했다. 국세청은 이번 규제 혁신이 우리 술의 해외 진출을 위한 기초 체력을 다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앞으로도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불합리한 규제를 과감히 철폐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日軍이 총 쏘자 ‘피땀’ 흘렸다는 비석…방치된 이순신 최후의 보루에 가보니

던 이유는 단 하나, 수백 척의 왜군에 맞서 싸워야 할 조선 수군의 전력이 고작 13척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전라도 사람을 모조리 죽여 씨를 말리라"는 잔혹한 명령 아래 전라도 전역은 초토화되고 있었고, 이순신은 함대를 보존하고 재건할 안전한 근거지가 절실했다. 법성포, 고군산도를 전전하고 우수영으로 돌아왔으나 이미 폐허가 된 뒤였다. 시야 확보가 어렵고 육지와 멀어 전략적으로 부적합했던 안편도를 거쳐 마침내 도달한 곳이 바로 고하도였다. 이곳은 영산강 하구에 위치해 군량 조달이 용이하고, 북서풍을 막아주는 천혜의 지형에 배를 만들 소나무까지 풍부해 수군 재건을 위한 최적의 장소였다.고하도에 닻을 내린 이순신은 곧바로 기적과도 같은 재건 작업에 착수했다. 도착하자마자 집과 군량 창고를 짓고, 길이 1km, 높이 2m의 석성을 쌓아 방어 태세를 갖췄다. 가장 놀라운 것은 군량미 확보와 함대 증강이었다. 피란민들의 배에 실린 곡식을 군량미로 바꾸는 ‘해로통행첩’ 제도를 시행해 단 열흘 만에 1만 석의 군량미를 비축했다. 동시에 백성들을 모아 구리와 쇠로 대포를 만들고, 섬의 풍부한 소나무를 베어 40여 척의 전선을 건조했다. 그 결과 13척에 불과했던 함대는 53척으로 늘어났고, 흩어졌던 장수와 병사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1천 명이던 병력은 2천 명으로 불어났다. 원균의 칠천량 패전으로 궤멸 직전까지 갔던 조선 수군이 불과 100여 일 만에 다시금 막강한 위용을 갖추게 된 것이다.오늘날 고하도는 이순신의 처절했던 재건의 역사 위에 화려한 현대적 관광 시설을 덧입었다. 케이블카를 타고 유달산 정상을 넘어서면 목포 앞바다와 해안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섬에 내리면 13척의 판옥선을 격자 모양으로 쌓아 올린 독특한 형태의 전망대가 방문객을 맞이하고, 용머리 해안을 따라서는 1818m 길이의 아름다운 해상데크가 쪽빛 바다 위로 이어진다. 가을이면 해안 절벽을 수놓는 노란 들국화의 군락은 탄성을 자아낸다. 사람들은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사진을 찍고 둘레길을 걸으며 여유를 만끽하지만, 이곳이 패배의 벼랑 끝에서 조선의 운명을 다시 일으켜 세운 역사의 심장부였음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이처럼 고하도는 아름다운 순례길 이전에 반드시 기억해야 할 역사의 현장이지만, 그 가치가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고 있다. 이순신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1722년 세워진 기념비와 모충각이 쓸쓸히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 당시 수군의 심장이었던 삼도수군통제영은 복원되지 못한 채 그 터만 남아있다. 일제강점기 일본군이 총을 쏘자 비석이 몇 달간 땀을 흘렸다는 일화가 전해질 만큼 민족의 한이 서린 곳이지만, 대부분의 방문객은 둘레길만 둘러볼 뿐 이곳을 스쳐 지나간다. 노량해전 승리의 발판을 마련한 재기의 땅, 고하도 삼도수군통제영의 조속한 복원을 통해 이곳이 단순한 관광지를 넘어 모든 국민이 찾는 역사의 순례길로 거듭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