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이슈

AI 시대, '손글씨'는 정말 사라질까?…국립한글박물관의 도발적 질문

 인공지능이 글을 쓰는 시대, 손으로 무언가를 써 내려가는 행위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남아있을까. 국립한글박물관이 매년 한글의 가능성을 실험해 온 '한글 실험 프로젝트'의 다섯 번째 결과물로 '글(자)감(각): 쓰기와 도구' 전시를 선보이며 이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올해는 특히 화재 피해 복구 공사로 인해 박물관을 벗어나 서울역의 옛 공간인 문화역서울284 RTO에 자리를 잡았다. 비록 공간은 작아졌지만, 쓰기라는 행위와 그 도구에 대한 23팀의 작가 및 디자이너들의 깊이 있는 고찰과 상상력은 139점의 작품 속에 더욱 밀도 높게 응축되어 관람객을 맞이한다. 이번 전시는 연필이라는 가장 아날로그적인 도구에서부터 최첨단 인공지능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관통하는 '쓰기'의 감각을 새롭게 조명한다.

 

전시의 포문은 국내외에서 가장 주목받는 SF 작가 김초엽의 상상력으로 열린다. 그는 이번 전시를 위해 집필한 단편 소설 '사각의 탈출'을 통해 아주 먼 미래, 한글로 사고하도록 설계된 인공의식 '네모'의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잊혔던 쓰기의 감각을 되찾는 과정을 그린 이 소설은 단순히 텍스트로 존재하는 것을 넘어, 전시의 핵심 주제를 관통하는 하나의 거대한 설치 작품처럼 기능한다. 이와 함께 김영글, 김성우, 전병근 등 다른 세 명의 작가 역시 '한글과 쓰기 도구'라는 주제 아래 각자의 사유를 담아낸 새로운 글을 선보이며, 관람객을 문자향(文字香) 짙은 사색의 세계로 이끈다. 이처럼 문학으로 시작하는 전시는 관람객에게 쓰기 행위의 본질적인 의미를 먼저 곱씹어보게 한다.

 


문학적 사유의 장을 지나면, 한글과 쓰기 도구를 재해석한 다채로운 디자인과 공예 작품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연필, 만년필, 노트 등 필기구를 만들거나 수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기록한 다큐멘터리 영상 '마음 쓰이는 쓰는 마음'은 쓰는 행위에 깃든 정성과 애정을 느끼게 한다. 또한, 혼자가 아닌 두 사람이 함께 잡고 쓸 수 있도록 고안된 독특한 연필이나, 먹과 벼루의 깊은 색감과 질감을 현대적으로 구현해 낸 서탁(書卓) 등은 쓰기 도구가 가진 조형적 아름다움과 가능성을 새롭게 발견하게 만든다. 이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을 넘어, 우리의 손과 몸의 감각을 일깨우고 타인과 교감하는 매개체로서의 도구를 재발견하는 과정이다.

 

전시는 아날로그적 감각에 대한 탐구에서 멈추지 않고, 동시대 기술인 인공지능(AI)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쓰기의 미래를 모색한다. 전시장 한편에서는 로봇 팔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인공지능이 생성한 신조어들을 끊임없이 써 내려가는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이는 인간 고유의 영역이라 여겨졌던 창작과 쓰기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현시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또한, 한글 단어가 가진 의미를 화려한 시각적 이미지로 변환해 보여주는 미디어아트는 문자가 가진 감각적 차원을 극대화하며 새로운 형태의 '읽기' 경험을 제공한다. 이처럼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다채로운 작품들을 통해 관람객은 인공지능 시대에 '쓴다'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인지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찾아가는 특별한 여정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세종대왕님도 흐뭇해할 '한글놀이터', 드디어 세종시에 상륙

종시문화관광재단과의 협력을 통해 세종문화예술회관에 '한글놀이터 세종관'을 새롭게 조성하고, 12일부터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이번 세종관 개관은 수도권에 집중된 우수 문화 콘텐츠를 지역으로 확산하는 중요한 첫걸음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특히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이름을 딴 세종시에 첫 지역 거점이 마련되면서, 아이들이 도시의 정체성과 한글의 가치를 함께 배우는 교육의 장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한글놀이터'는 '한글 공부'라는 딱딱한 학습의 개념을 완전히 뒤집는 신개념 체험 공간이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한글을 외우고 쓰는 대신, 온몸으로 부딪히고 뛰어놀며 한글의 원리를 자연스럽게 체득한다. 세종관은 이러한 기본 취지에 세종시의 지역적 특색을 녹여 한층 더 특별한 공간으로 꾸며졌다. 관람객들은 한글 자모음의 모양을 본떠 만든 '기역통통', '니은통통' 등 7종의 귀여운 캐릭터와 함께 '말랑통통 마을'의 비밀 열쇠를 찾아 나서는 흥미진진한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자음과 모음의 형태를 닮은 구조물을 오르내리고, 소리의 원리를 이용한 놀이를 즐기며 한글의 제자 원리와 확장성을 어렵지 않게 이해하게 된다.이번 세종관의 성공적인 개관은 중앙정부 기관과 지방자치단체 간의 성공적인 협력 모델을 제시했다는 점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국립한글박물관이 수년간의 운영 노하우를 담아 개발한 핵심 콘텐츠를 제공하고, 세종시와 세종시문화관광재단이 지역의 특색을 반영한 공간 조성과 운영을 맡아 시너지를 창출했다. 강정원 국립한글박물관장은 "서울에서만 즐길 수 있었던 한글놀이터를 지역 주민들도 향유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고 소감을 밝히며, 이번 세종관을 시작으로 한글 교육 문화의 전국적인 확산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국립한글박물관은 이번 세종관 개관을 발판 삼아 내년부터는 전국 지자체를 대상으로 공모를 진행, 지역 거점별로 한글놀이터를 더욱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이는 전국의 더 많은 어린이가 사는 곳 가까이에서 양질의 한글 체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앞으로 3년간 상설 운영될 '한글놀이터 세종관'이 세종시를 넘어 충청권의 대표적인 어린이 문화 명소로 자리 잡고, 미래 세대에게 우리 글 한글의 소중함과 과학적 우수성을 알리는 전초기지 역할을 톡톡히 해낼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