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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삼겹살에 소주?…'인생샷' 보장하는 호텔 뷰맛집 송년회 5곳

 고기 굽는 냄새와 술 냄새가 뒤섞인 두툼한 외투, 시끄러운 건배사와 왁자지껄한 분위기. 연말 송년회 하면 떠오르는 익숙한 풍경이지만, 모두가 이런 방식을 선호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개성과 취향을 중시하는 MZ세대를 중심으로, 보다 조용하고 특별한 분위기에서 한 해를 마무리하려는 수요가 늘면서 호텔업계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뻔한 회식 대신 탁 트인 도시의 야경과 감미로운 라이브 공연, 그리고 호텔 셰프가 선보이는 미식을 즐기는 '우아한 송년회'가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특급호텔들이 저마다의 매력을 담은 프라이빗 파티 공간을 선보이며 고객 유치에 나섰다.

 

가장 큰 무기는 단연 '압도적인 뷰'와 '완벽한 프라이빗 공간'이다. 그랜드 워커힐 서울이 16층에 새롭게 리뉴얼한 '럭스바'는 통창을 통해 한강과 아차산의 파노라마 야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소규모 모임부터 대관 행사까지 가능한 3개의 독립된 프라이빗 룸을 갖춰 우리끼리만 오붓한 시간을 보내기에 제격이다. 풀만 앰배서더 서울 이스트폴 24층의 샴페인 바 '버블렉쓰' 역시 한강의 고요한 흐름을 감상하며 프라이빗한 행사를 진행할 수 있어 기업의 연말 모임이나 VIP 고객 행사 장소로 인기를 끌고 있다. 고객의 취향과 행사 목적에 맞춘 다이닝 구성은 물론, 공간 연출까지 전문적인 컨설팅을 제공해 모임의 품격을 한층 높여준다.

 


단순히 공간만 제공하는 것을 넘어, 미식과 엔터테인먼트를 결합한 다채로운 콘텐츠로 승부하는 곳도 많다. 페어몬트 앰배서더 서울 29층의 '마리포사'는 '페스티브 심포니'라는 콘셉트 아래 와인 파티, 크리스마스 재즈 나이트, 새해 카운트다운 등 연말의 감정선을 고조시키는 이벤트를 순차적으로 선보인다. 여의도의 화려한 야경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재즈 공연과 함께 호텔 미식을 즐기는 경험은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한다. 그런가 하면 '목시 서울 명동'의 '바 목시'는 스파클링 와인, 하이볼, 생맥주 등 다양한 주류와 세미 뷔페를 무제한으로 즐길 수 있는 '애프터워크' 프로모션을 진행한다. 여기에 젠가, 아케이드 게임 등을 즐길 수 있는 게임존까지 갖춰 힙하고 생동감 넘치는 파티를 즐기려는 이들에게 안성맞춤이다.

 

좀 더 특별하고 하이엔드 경험을 원한다면 서울드래곤시티 33층의 '내추럴 8 스파이 파티룸'이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이곳에서는 월드클래스 바텐더가 선보이는 칵테일 쇼를 감상하고, 매주 토요일 저녁에는 라이브 재즈 공연을 즐기며 감미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또한, 각기 다른 콘셉트로 꾸며진 3개의 프라이빗 파티룸에서는 프러포즈나 브라이덜 샤워 등 특별한 목적에 맞춘 전용 패키지를 이용할 수 있어 한층 개인화된 맞춤형 파티가 가능하다. 억지스러운 건배사나 시끄러운 분위기 대신, 아름다운 야경과 맛있는 음식, 그리고 즐거운 콘텐츠가 있는 호텔에서의 송년회는 이제 하나의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당신이 몰랐던 '항일의 성지'…이 섬에만 365일 태극기가 휘날린다

표지석처럼, 이곳은 인구 2천 명 남짓한 작은 섬에서 무려 89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저항의 성지다. 분단 이후 '빨갱이 섬'이라는 오명 속에 신음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365일 태극기가 휘날리는 민족의 화산으로 자리 잡은 소안도의 뜨거운 역사는 등대와 학교, 그리고 비석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그 저항 정신의 첫 불꽃은 1909년 외딴섬의 등대에서 타올랐다. 동학군 출신 이준하 등 6인은 일본인들이 세운 당사도 등대를 습격해 시설을 파괴하고 일본인들을 살해했다. 이는 단순한 살인이 아니라, 모든 것을 빼앗긴 조선인의 독립 의지를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었다. 이로 인해 소안도 주민 2천여 명 중 800명이 일제의 감시 대상인 '불량선인'으로 낙인찍혔지만, 저항은 결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이 사건은 소안도의 항일 운동에 거대한 불을 지폈다.소안도의 저항은 무력 투쟁에만 그치지 않았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강탈당한 토지 소유권을 되찾기 위해 13년간의 끈질긴 법정 투쟁을 벌여 마침내 승소했다. 주민들은 이를 기념해 1923년 '사립 소안학교'를 세웠다. 이 학교는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니라, 민족 교육을 통해 항일 인재를 길러내는 독립운동의 핵심 근거지였다. 교사와 학생들은 비밀결사를 조직하며 항일 운동의 최전선에 섰고, 이는 결국 일제에 의해 강제 폐교되는 비운을 맞았지만, 그 정신만큼은 꺾을 수 없었다.이 모든 투쟁의 중심에는 송내호 같은 뛰어난 지도자가 있었다. 교사였던 그는 무장투쟁 단체를 조직하고 사회주의 사상을 받아들이며 시대의 모순을 해결하고자 했다. 그의 형제 중 셋이 독립운동에 투신했는데, 어머니의 간절한 만류에 순사가 된 막내아들의 묘비에만 유일하게 태극기 문양이 없다는 사실은 시대의 아픔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양반 가문이 없어 신분 갈등이 적었고, 일찍부터 외부 세계에 눈떴으며, 교육열이 높았던 소안도의 독특한 환경은 이 작은 섬이 국내외를 아우르는 강력한 저항의 중심이 될 수 있었던 배경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