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겨울철 '햇볕 결핍' 주의보!

 겨울철은 짧아진 해와 추위 탓에 실내 활동이 늘어나면서 햇볕을 쬐는 시간이 급격히 줄어드는 계절이다. 이처럼 햇볕이 부족해지면 우리 몸의 필수 영양소인 비타민D 합성이 저해될 뿐만 아니라, 수면의 질을 좌우하는 생체 리듬까지 무너져 건강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히 면역력과 생체 시계 기능이 약해지는 중장년 및 노년층에게는 겨울철 아침 햇볕 쬐기가 필수적인 건강 관리 수단으로 떠오른다.

 

우리 몸에 필요한 비타민D는 대부분 햇볕을 통해 피부에서 합성된다. 비타민D는 칼슘 흡수를 도와 뼈와 근육 건강을 유지하는 근골격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나아가 면역세포 기능을 강화해 감염병 예방에 기여한다. 또한, 심혈관계 질환이나 일부 암 발병 위험을 낮추는 효과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중장년 이상 연령대에게는 필수적인 영양소로 꼽힌다.

 

하지만 겨울철 실내 생활이 길어지면 비타민D 부족 현상이 심화된다. 병원에서 간병 일을 하는 69세 채송월 씨의 사례처럼, 하루 종일 실내에서 환자를 돌보며 햇볕 쬘 틈이 없는 경우 수면장애와 우울감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전문가들은 "노년층은 젊은 층에 비해 피부의 비타민D 합성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에, 겨울철 일조량 감소는 비타민D 결핍을 더욱 심각하게 만들 수 있다"고 경고한다.

 

햇볕은 비단 비타민D 합성뿐 아니라, 수면을 조절하는 호르몬인 멜라토닌 분비 리듬을 정상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멜라토닌은 보통 밤 9시 전후에 급격히 분비량이 늘어나 수면을 유도하고, 아침이 되면 햇볕의 자극을 받아 분비가 억제되면서 우리 몸을 깨어 있는 상태로 전환시킨다.

 

문제는 현대인의 겨울 생활 패턴이다. 해가 짧아지고 추워지면서 실내에서 오래 생활하고, 밤에는 인공 조명에 장시간 노출되는 생활은 인류가 오랜 세월 유지해 온 자연스러운 '수면-각성 주기'를 무너뜨린다.

 


특히 나이가 들면 수면 리듬을 조절하는 생체 시계 기능 자체가 자연적으로 약화된다. 멜라토닌 생성량도 줄어들기 때문에 노년층은 수면의 질이 떨어지고 우울감에 취약해지기 쉽다. 롯데의료재단 하남보바스병원 신경과 박기홍 과장은 "생체 시계 기능이 약해진 노년층일수록 햇볕을 보는 시간이 줄어들면 수면 조절 장애나 우울감 같은 문제들이 더 심각하게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코로나19 기간 성인 1,7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오전 10시 이전에 햇볕을 쬔 그룹은 그렇지 않은 그룹에 비해 잠드는 시간이 더 빨라지고 수면의 질이 유의미하게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아침 햇볕이 생체 시계를 효과적으로 재설정하여 수면 리듬을 규칙적으로 유지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을 입증한다.

 

따라서 겨울철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의도적으로 햇볕을 쬐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적절한 비타민D 합성과 생체 리듬 유지를 위해서는 해가 쨍한 날을 기준으로 오전 시간대 약 20분 동안 햇빛을 쬐는 것이 권장된다. 주 3~4회 정도 규칙적으로 아침 햇볕을 쬐는 습관은 노년층의 근골격계 건강을 지키고, 멜라토닌 분비를 정상화하여 깊은 잠과 활기찬 낮을 선사하는 '겨울철 보약'이 될 수 있다.

 

당신이 몰랐던 '항일의 성지'…이 섬에만 365일 태극기가 휘날린다

표지석처럼, 이곳은 인구 2천 명 남짓한 작은 섬에서 무려 89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저항의 성지다. 분단 이후 '빨갱이 섬'이라는 오명 속에 신음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365일 태극기가 휘날리는 민족의 화산으로 자리 잡은 소안도의 뜨거운 역사는 등대와 학교, 그리고 비석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그 저항 정신의 첫 불꽃은 1909년 외딴섬의 등대에서 타올랐다. 동학군 출신 이준하 등 6인은 일본인들이 세운 당사도 등대를 습격해 시설을 파괴하고 일본인들을 살해했다. 이는 단순한 살인이 아니라, 모든 것을 빼앗긴 조선인의 독립 의지를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었다. 이로 인해 소안도 주민 2천여 명 중 800명이 일제의 감시 대상인 '불량선인'으로 낙인찍혔지만, 저항은 결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이 사건은 소안도의 항일 운동에 거대한 불을 지폈다.소안도의 저항은 무력 투쟁에만 그치지 않았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강탈당한 토지 소유권을 되찾기 위해 13년간의 끈질긴 법정 투쟁을 벌여 마침내 승소했다. 주민들은 이를 기념해 1923년 '사립 소안학교'를 세웠다. 이 학교는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니라, 민족 교육을 통해 항일 인재를 길러내는 독립운동의 핵심 근거지였다. 교사와 학생들은 비밀결사를 조직하며 항일 운동의 최전선에 섰고, 이는 결국 일제에 의해 강제 폐교되는 비운을 맞았지만, 그 정신만큼은 꺾을 수 없었다.이 모든 투쟁의 중심에는 송내호 같은 뛰어난 지도자가 있었다. 교사였던 그는 무장투쟁 단체를 조직하고 사회주의 사상을 받아들이며 시대의 모순을 해결하고자 했다. 그의 형제 중 셋이 독립운동에 투신했는데, 어머니의 간절한 만류에 순사가 된 막내아들의 묘비에만 유일하게 태극기 문양이 없다는 사실은 시대의 아픔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양반 가문이 없어 신분 갈등이 적었고, 일찍부터 외부 세계에 눈떴으며, 교육열이 높았던 소안도의 독특한 환경은 이 작은 섬이 국내외를 아우르는 강력한 저항의 중심이 될 수 있었던 배경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