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이슈

음악가들조차 고개 젓는 '최악의 난이도'…아벨 콰르텟, 베토벤의 '9부 능선'에 오르다

 현악사중주단 '아벨 콰르텟'이 길고 험난했던 '베토벤 현악사중주 전곡 연주'라는 대장정의 마침표를 찍는다. 그들이 14년 전 결성되었던 도시이자 베토벤의 음악적 숨결이 깃든 비엔나의 정신을 이어받아 시작했던 이 거대한 프로젝트의 마지막 두 공연이 오는 2월 5일과 7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펼쳐진다. 단순히 작곡가의 모든 곡을 연주하는 것을 넘어, 그의 가장 깊은 내면과 혁신적인 실험 정신까지 파고들었던 이들의 여정이 마침내 정복의 9부 능선을 넘어 마지막 봉우리를 향하고 있다.

 

첫날인 5일의 프로그램은 그야말로 베토벤이 남긴 가장 도전적이고 난해한 작품들로 채워진다.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영향 아래 있으면서도 자신만의 폭발적인 긴장감을 드러내는 초기작 4번, "그래야만 하는가? - 그래야만 한다!"라는 유명한 철학적 문답을 남긴 그의 마지막 현악사중주 16번이 연주된다. 하이라이트는 단연 후기 양식의 정점이자 극단적 파편화로 시대를 초월한 혁신성을 보여주는 13번과 '대푸가'다. 21세기에 들어도 여전히 현대음악처럼 들리는 이 곡들은 연주자에게 극한의 기교와 깊은 해석력을 요구하기에, 이날의 공연은 아벨 콰르텟의 음악적 역량을 남김없이 증명하는 시험대가 될 것이다.

 


이틀 뒤인 7일 공연에서는 베토벤의 또 다른 얼굴을 마주하게 된다. 모차르트에 대한 존경심이 엿보이는 우아한 5번으로 시작해, 그의 중기 시대를 화려하게 연 걸작 '라주모프스키' 1번이 뒤를 잇는다. 이 곡을 통해 베토벤이 어떻게 고전의 틀을 부수고 자신만의 광대한 음악 세계를 구축해 나갔는지 확인할 수 있다. 대미를 장식할 곡은 7개의 악장이 쉬지 않고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처럼 이어지는 14번이다. 후기 현악사중주 양식의 정수가 집약된 이 곡은 한 인간이 다다를 수 있는 가장 심오한 내면의 성찰을 담고 있어, 관객들에게 깊은 감동과 카타르시스를 선사할 것으로 기대된다.

 

결국 이번 두 번의 공연은 아벨 콰르텟이 자신들의 음악적 뿌리인 베토벤의 세계를 어떻게 탐험하고 해석해왔는지를 집대성해 보여주는 자리다. 14년이라는 시간 동안 쌓아 올린 그들의 앙상블과 음악적 깊이가 베토벤이라는 거대한 산맥의 가장 험준한 봉우리와 가장 장엄한 풍경을 어떻게 그려낼지, 클래식 팬들의 모든 관심이 서울 서초동으로 집중되고 있다. 이들의 손끝에서 완성될 베토벤의 우주, 그 마지막 순환의 순간을 놓쳐서는 안 될 이유다.

 

당신이 몰랐던 '항일의 성지'…이 섬에만 365일 태극기가 휘날린다

표지석처럼, 이곳은 인구 2천 명 남짓한 작은 섬에서 무려 89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저항의 성지다. 분단 이후 '빨갱이 섬'이라는 오명 속에 신음하기도 했지만, 이제는 365일 태극기가 휘날리는 민족의 화산으로 자리 잡은 소안도의 뜨거운 역사는 등대와 학교, 그리고 비석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그 저항 정신의 첫 불꽃은 1909년 외딴섬의 등대에서 타올랐다. 동학군 출신 이준하 등 6인은 일본인들이 세운 당사도 등대를 습격해 시설을 파괴하고 일본인들을 살해했다. 이는 단순한 살인이 아니라, 모든 것을 빼앗긴 조선인의 독립 의지를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었다. 이로 인해 소안도 주민 2천여 명 중 800명이 일제의 감시 대상인 '불량선인'으로 낙인찍혔지만, 저항은 결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이 사건은 소안도의 항일 운동에 거대한 불을 지폈다.소안도의 저항은 무력 투쟁에만 그치지 않았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강탈당한 토지 소유권을 되찾기 위해 13년간의 끈질긴 법정 투쟁을 벌여 마침내 승소했다. 주민들은 이를 기념해 1923년 '사립 소안학교'를 세웠다. 이 학교는 단순한 교육기관이 아니라, 민족 교육을 통해 항일 인재를 길러내는 독립운동의 핵심 근거지였다. 교사와 학생들은 비밀결사를 조직하며 항일 운동의 최전선에 섰고, 이는 결국 일제에 의해 강제 폐교되는 비운을 맞았지만, 그 정신만큼은 꺾을 수 없었다.이 모든 투쟁의 중심에는 송내호 같은 뛰어난 지도자가 있었다. 교사였던 그는 무장투쟁 단체를 조직하고 사회주의 사상을 받아들이며 시대의 모순을 해결하고자 했다. 그의 형제 중 셋이 독립운동에 투신했는데, 어머니의 간절한 만류에 순사가 된 막내아들의 묘비에만 유일하게 태극기 문양이 없다는 사실은 시대의 아픔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양반 가문이 없어 신분 갈등이 적었고, 일찍부터 외부 세계에 눈떴으며, 교육열이 높았던 소안도의 독특한 환경은 이 작은 섬이 국내외를 아우르는 강력한 저항의 중심이 될 수 있었던 배경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