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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따 주행' 딛고 일어선 김보름, 21년 파란만장 여정 마침표

 한국 스피드스케이팅 중장거리의 간판선수였던 김보름(32·강원도청)이 21년간 정들었던 빙판을 떠난다. 그는 30일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11살에 처음 스케이트를 시작해 2010년부터 2024년까지 국가대표로 얼음 위에 섰다"며 "올해를 마지막으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은퇴를 결정했다"고 직접 밝혔다. 14년간 태극마크를 달고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의 한 시대를 풍미했던 그는 영광과 상처로 얼룩진 선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고 제2의 인생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김보름은 "어린 시절 얼음 위에 처음 발을 디뎠던 날부터 스케이트는 내 삶의 일부였다"며 남다른 소회를 전했다.

 

김보름의 선수 생활은 화려한 영광의 순간들로 가득했다.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을 시작으로 2018 평창, 2022 베이징 대회까지 3회 연속 올림픽 무대를 밟으며 한국 여자 스피드스케이팅의 대들보 역할을 했다. 그의 커리어에 정점을 찍은 것은 안방에서 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이었다. 당시 여자 매스스타트 종목에서 값진 은메달을 목에 걸며 국민들에게 큰 기쁨을 안겼다. 올림픽에 앞서 2017년에는 삿포로 동계 아시안게임 여자 5000m와 강릉 세계선수권 매스스타트에서 연달아 금메달을 휩쓸며 세계 정상급 기량을 과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여정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평창 올림픽 당시 팀추월 종목에서 불거진 이른바 '왕따 주행 논란'은 그의 선수 인생에서 가장 큰 시련이었다. 일부 선수가 뒤처졌다는 이유로 엄청난 비난 여론에 휩싸였고, 그는 이후 열린 매스스타트에서 은메달을 따고도 기쁨의 눈물 대신 슬픔의 눈물을 흘려야 했다. 그러나 기나긴 법정 다툼과 문화체육관광부의 특별 감사를 통해 '왕따 주행'은 없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억울함을 벗을 수 있었다. 2023년 5월에는 자신에게 허위 주장을 제기한 동료 선수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일부 승소 판결을 받아내며 기나긴 오명의 터널에서 벗어났다.

 

온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감당하기 힘든 시련을 겪었지만, 그는 결코 스케이트를 놓지 않았다. 모든 논란을 딛고 출전한 2022 베이징 올림픽 매스스타트에서 5위를 차지하며 마지막까지 투혼을 불살랐다. 김보름은 "말로 다 담기 어려운 시간도 지나왔고, 결과보다 과정이 더 버거웠던 날도 있었다"고 회상하며 "그럼에도 끝까지 그 자리에 설 수 있었던 이유는 스케이트를 놓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마지막으로 "많은 어려움과 좌절 속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선수로 기억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말을 남기며, 파란만장했던 선수 생활과 아름다운 작별을 고했다.

 

1500년 전 황금 말이 날아오를 듯…천마총의 압도적 비주얼

내내 여행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화려함 대신 고즈넉한 정취가 내려앉은 겨울의 대릉원은 또 다른 매력을 발산한다. 여름내 무성했던 잔디가 낮게 가라앉으며 23기에 달하는 거대한 고분들의 유려한 능선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차가운 공기 속,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솟아오른 고분들의 기하학적인 곡선은 마치 대지 위에 그려진 거대한 예술 작품처럼 다가온다.대릉원 정문을 지나면 하늘을 찌를 듯 솟은 소나무 군락이 1500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초록빛 관문처럼 방문객을 맞이한다. 이 숲길을 지나면 단정한 담장 너머로 신라 최초의 김씨 왕인 미추왕릉이 모습을 드러낸다. 미추왕릉은 다른 고분들과 달리 푸른 대나무 숲이 능을 호위하듯 감싸고 있는데, 이는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대나무 잎을 귀에 꽂은 병사들이 나타나 적을 물리쳤다는 ‘죽엽군(竹葉軍)’의 전설과 맞닿아 있다. 겨울바람에 서걱이는 댓잎 소리는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왕의 굳은 의지가 담긴 외침처럼 들려와 발걸음을 숙연하게 만든다.대릉원에서 유일하게 그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는 천마총은 신라 문화의 정수를 만날 수 있는 핵심 공간이다. 어두운 내부로 들어서는 순간, 1500년 전 유물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정교하고 화려한 황금 유물들이 압도적인 빛을 발산한다. 그중에서도 발견된 신라 금관 중 가장 화려하다는 평가를 받는 천마총 금관은 완벽한 균형미와 섬세한 세공 기술로 보는 이의 탄성을 자아낸다. 또한, 자작나무 껍질 위에 그려진 천마도(天馬圖)는 금방이라도 무덤 밖으로 비상할 듯 역동적인 기운을 뿜어낸다. 힘차게 하늘로 솟구치는 천마의 모습은 새해의 도약을 꿈꿨던 신라인의 염원이 담긴 듯, 시대를 넘어 강렬한 생명력을 전한다.천마총을 나와 다시 밖으로 나서면 남과 북, 두 개의 봉분이 이어진 거대한 황남대총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마치 두 개의 산봉우리가 이어진 듯한 압도적인 규모와 대지의 품처럼 너르고 유려한 곡선은 죽음의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포근함과 생명력을 느끼게 한다. 이 거대한 무덤을 만들기 위해 동원되었을 이름 모를 민초들의 땀방울을 생각하면 1500년의 세월이 더욱 묵직하게 다가온다. 주인공이 밝혀진 미추왕릉을 제외한 대부분의 무덤들은 이름을 지우는 대신, 그 자체로 신라라는 시대의 거대한 실루엣이 되어 오늘날 우리에게 고요한 위로와 영감을 건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