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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행 상간남 입 열었다, 동거설의 진실은?

새해 첫날부터 연예계가 발칵 뒤집혔다. 트로트 가수 숙행이 상간녀로 피소되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진 가운데, 사건의 중심에 서 있는 유부남 B씨가 직접 입을 열어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1월 1일 유튜브 채널 연예뒤통령 이진호를 통해 공개된 인터뷰에서 B씨는 숙행과의 만남부터 논란이 된 스킨십, 그리고 아내와의 갈등 상황을 상세히 털어놨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달 29일 JTBC 사건반장을 통해 보도된 상간 의혹이었다. 두 자녀를 둔 40대 가정주부 A씨는 남편 B씨와 숙행이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으며, 심지어 동거까지 했다고 주장하며 CCTV 영상을 공개했다. 이에 숙행은 법적 절차를 통해 진실을 밝히겠다며 출연 중이던 MBN 현역가왕3에서 자진 하차하는 강수를 뒀다.

 

인터뷰에 응한 1979년생 사업가 B씨는 숙행과의 첫 만남에 대해 2024년 8~9월경 우연한 식사 자리에서 시작되었다고 밝혔다. 당시 숙행의 절친과 캠핑 관련 사업을 논의하던 중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안부를 묻는 정도였으나, 1월 부산 출장에 B씨가 매니저 대신 동행하며 관계가 깊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당시 매니저가 부재중인 숙행을 돕고 싶은 호기심에 동행했을 뿐, 그때까진 연인 관계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가장 논란이 된 부분은 숙행이 B씨가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느냐는 점이다. B씨는 숙행에게 이미 이혼을 준비 중이며 사실상 마무리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아내와 수년 전부터 관계가 파탄 났으며, 첫째 자녀의 수능이 끝날 때까지만 서류 정리를 미루기로 합의한 상태였다고 강조했다. 숙행은 처음에 연예인으로서 신분을 걱정하며 겁을 냈지만, B씨의 설득에 안일해졌던 것 같다고 전했다.

 

B씨는 특히 숙행이 자신에게 속은 피해자라는 점을 여러 차례 피력했다. 별거 중이던 자신을 돕기 위해 숙행이 가구점을 소개해 주거나 반찬을 챙겨준 것이 동거로 와전되었다는 것이다. 엘리베이터 키스 장면에 대해서도 사람이 없는 프라이빗한 공간이라 안심하고 스킨십을 한 것일 뿐, 숙행의 집이 아닌 18평짜리 본인의 자취방에 왔다 갔다 한 것이 오해를 샀다고 해명했다.

 

 

 

아내 A씨가 사건을 공론화한 배경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B씨는 아내가 숙행이 공인이라는 점을 이용해 복수하려 한다며, 숙행은 언론에 흘리면 죽는다는 표현까지 썼다고 주장했다. 사실상 본인의 과거 여자 문제를 숙행이라는 타깃을 통해 되갚아주려 한다는 것이 B씨의 개인적인 소견이다.

 

현재 숙행과 B씨의 관계는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보인다. B씨는 숙행의 소속사가 없어 세무나 행정 업무를 여전히 도와주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숙행이 아내와의 통화에서 본인을 공격하겠다고 한 발언 역시, 본인이 나중에 구상권을 청구하라고 조언한 결과라고 감쌌다.

 

B씨는 인터뷰 말미에 숙행에게 나로 인해 모든 일이 생겨 너무 미안하고 마음이 아프다며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돌려달라고 요청했다. 아내에게는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원만하게 협의 이혼을 하고 싶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이번 유부남의 고백으로 숙행의 상간 피소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유부남인 것을 알고 만났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지만, 그 과정에서 기만과 오해가 있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향후 법정 공방에서 어떤 판결이 나올지 대중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숙행이 이번 사태를 딛고 트로트 가수로 재기할 수 있을지, 아니면 이대로 나락으로 떨어질지는 법의 심판과 대중의 정서에 달려 있다.

 

 

 

1500년 전 황금 말이 날아오를 듯…천마총의 압도적 비주얼

내내 여행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화려함 대신 고즈넉한 정취가 내려앉은 겨울의 대릉원은 또 다른 매력을 발산한다. 여름내 무성했던 잔디가 낮게 가라앉으며 23기에 달하는 거대한 고분들의 유려한 능선이 더욱 선명하게 드러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차가운 공기 속,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솟아오른 고분들의 기하학적인 곡선은 마치 대지 위에 그려진 거대한 예술 작품처럼 다가온다.대릉원 정문을 지나면 하늘을 찌를 듯 솟은 소나무 군락이 1500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초록빛 관문처럼 방문객을 맞이한다. 이 숲길을 지나면 단정한 담장 너머로 신라 최초의 김씨 왕인 미추왕릉이 모습을 드러낸다. 미추왕릉은 다른 고분들과 달리 푸른 대나무 숲이 능을 호위하듯 감싸고 있는데, 이는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대나무 잎을 귀에 꽂은 병사들이 나타나 적을 물리쳤다는 ‘죽엽군(竹葉軍)’의 전설과 맞닿아 있다. 겨울바람에 서걱이는 댓잎 소리는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왕의 굳은 의지가 담긴 외침처럼 들려와 발걸음을 숙연하게 만든다.대릉원에서 유일하게 그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는 천마총은 신라 문화의 정수를 만날 수 있는 핵심 공간이다. 어두운 내부로 들어서는 순간, 1500년 전 유물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정교하고 화려한 황금 유물들이 압도적인 빛을 발산한다. 그중에서도 발견된 신라 금관 중 가장 화려하다는 평가를 받는 천마총 금관은 완벽한 균형미와 섬세한 세공 기술로 보는 이의 탄성을 자아낸다. 또한, 자작나무 껍질 위에 그려진 천마도(天馬圖)는 금방이라도 무덤 밖으로 비상할 듯 역동적인 기운을 뿜어낸다. 힘차게 하늘로 솟구치는 천마의 모습은 새해의 도약을 꿈꿨던 신라인의 염원이 담긴 듯, 시대를 넘어 강렬한 생명력을 전한다.천마총을 나와 다시 밖으로 나서면 남과 북, 두 개의 봉분이 이어진 거대한 황남대총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마치 두 개의 산봉우리가 이어진 듯한 압도적인 규모와 대지의 품처럼 너르고 유려한 곡선은 죽음의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포근함과 생명력을 느끼게 한다. 이 거대한 무덤을 만들기 위해 동원되었을 이름 모를 민초들의 땀방울을 생각하면 1500년의 세월이 더욱 묵직하게 다가온다. 주인공이 밝혀진 미추왕릉을 제외한 대부분의 무덤들은 이름을 지우는 대신, 그 자체로 신라라는 시대의 거대한 실루엣이 되어 오늘날 우리에게 고요한 위로와 영감을 건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