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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대신 갱도 택했던 화가 황재형 별세

 한국인의 땀방울과 거친 손마디를 사실적으로 그려내며 민중미술의 한 획을 그었던 황재형 화백이 27일 별세했다. 1952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난 고인은 중앙대학교 회화과 재학 시절부터 사회적 약자의 삶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1981년 미술 그룹 ‘임술년’을 결성하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그는 탄광 매몰 사고로 희생된 광부의 작업복을 묘사한 ‘황지 330’을 발표하며 미술계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 작품은 당시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으로 등록될 만큼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았으며, 화려한 서울의 삶 대신 척박한 현장을 선택하게 된 고인의 예술 인생의 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고인은 1982년 "가장 뜨거운 진실은 현장에 있다"는 신념 하나로 강원도 태백 탄광촌으로 거처를 옮겼다. 당시 대학가와 지식인 사회에서 담론으로만 떠돌던 노동의 가치를 직접 몸으로 겪어내기 위한 결단이었다. 그는 단순히 관찰자의 시선으로 광부를 바라보는 데 그치지 않고, 스스로 갱도 깊숙이 들어가 막장 노동자가 되어 석탄을 캤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동료들과 함께 땀 흘리며 겪은 실존적 고뇌는 훗날 ‘식사’, ‘광부 초상’ 등 그의 대표작들로 승화되었다. 신경림 시인은 그를 두고 "목에 힘을 주는 화가가 아니라 삶의 진실을 배워 화폭에 옮기는 화가"라며 극찬하기도 했다.

 


황 화백의 작업 방식은 독창적이고도 처절했다. 그는 갱도 안의 공기를 화폭에 담기 위해 캔버스 위에 실제 석탄 가루를 섞은 물감을 사용하거나 흙과 같은 혼합 재료를 썼다. 1985년부터 시작해 20여 년이 지난 2007년에야 완성한 ‘식사 Ⅱ’는 좁은 갱도 안에서 식사하는 광부들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존엄과 생존의 무게를 묵직하게 전달한다. 그는 탄광이라는 특수한 공간을 넘어 한국의 산세를 담은 ‘백두대간’ 연작에도 수십 년을 매달렸다. 지각 변동을 뚫고 솟아오른 땅의 역동적인 생명력을 그리며, 억눌린 자들이 뿜어내는 에너지를 예술로 승화시키고자 노력했다.

 

생전 고인은 자신을 수식하는 ‘광부 화가’라는 호칭에 대해 남다른 철학을 피력했다. 그는 세상 어디든 희망이 보이지 않는 곳이 곧 ‘막장’이라며, 자아를 실현하지 못한 채 일상에 매몰되어 살아가는 현대인들 역시 또 다른 의미의 광부라고 말했다. 서울이나 부산 같은 대도시에도 본성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수많은 광부가 존재한다는 그의 통찰은 노동의 가치가 소외된 현대 사회를 향한 날카로운 경종이었다. 그는 자신의 그림이 이 시대의 모든 ‘광부’에게 작은 위로와 이야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랐으며, 화폭을 통해 그들의 고단한 삶을 보듬고자 했다.

 


고인의 예술적 업적은 대외적으로도 높게 평가받았다. 2016년 제1회 박수근 미술상을 수상하며 한국 리얼리즘 회화의 정통성을 잇는 작가로 공인받았고, 2021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대규모 개인전 ‘회천(回天)’을 열어 평생의 작업 세계를 대중 앞에 펼쳐 보였다. 유가족 측은 고인이 40여 년간 쥘 흙은 있어도 뉠 땅은 없던 소외된 이들의 실존을 담기 위해 질긴 고무를 씹는 것과 같은 고통스러운 작업 여정을 이어왔다고 회고했다. 노동하는 인간의 숭고함을 증명하려 했던 화가의 치열했던 붓질은 이제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다.

 

황재형 화백의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었으며, 아내 모진명 씨와 아들 제윤 씨, 딸 정아 씨가 슬픔 속에 조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발인은 오는 3월 1일 오전 7시 40분에 엄수될 예정이다. 고인이 평생을 바쳐 그려낸 광부의 얼굴과 강원도의 풍경들은 이제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한 주요 미술관의 소장품으로 남아 그가 찾고자 했던 '현장의 진실'을 후대에 전하게 되었다. 척박한 땅에서 피어난 그의 예술혼은 한국 미술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채,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태백의 노을처럼 짙은 여운을 남기며 우리 곁을 떠났다.

 

냉이·도다리의 변신은 무죄, 호텔 셰프의 봄 요리

특급호텔가에서도 저마다 봄의 정수를 담아낸 특별한 미식의 향연을 펼치며 손님맞이에 나섰다.롯데호텔 서울은 한식, 중식, 일식 각 분야의 대표 레스토랑 세 곳에서 동시에 봄 특선 메뉴를 선보이며 선택의 폭을 넓혔다. 5월 말까지 이어지는 이번 프로모션은 각국의 요리 철학을 바탕으로 봄 제철 식재료를 어떻게 새롭게 해석했는지 비교하며 맛보는 재미를 선사한다.한식당 '무궁화'는 우리에게 친숙한 식재료의 화려한 변신을 꾀했다. 쌉쌀한 냉이와 아삭한 우엉은 바삭한 강정으로 재탄생해 입맛을 돋우고, 제철 맞은 도다리는 향긋한 봄 채소와 함께 얼큰한 매운탕으로 끓여냈다. 여기에 살이 꽉 찬 꽃게를 완자로 빚어 튀겨낸 뒤 새콤달콤한 산수유 소스를 곁들인 탕수는 전통의 틀을 깬 창의성이 돋보인다.중식당 '도림'은 봄철 원기회복을 위한 고급 보양식에 집중했다. 진귀한 오골계와 전복을 우려낸 육수에 알싸한 달래 향을 더한 '봄향 불도장'은 이름만으로도 기운을 북돋는다. 부드러운 가자미살에 감칠맛 나는 칠리소스를 얹고, 활 바닷가재 위에는 향긋한 실파 소스를 올려 재료 본연의 맛과 소스의 조화를 극대화했다.일식당 '모모야마'는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섬세한 손길로 봄의 미각을 깨운다. 섬진강 재첩에 달래와 두릅을 넣어 끓여낸 맑은 국은 시원하고 개운한 맛이 일품이다. 이어 부드러운 한우 안심구이에 향긋한 경남 함양파를 곁들여 풍미를 더하고, 이 시기가 아니면 맛보기 힘든 새조개를 얇게 저며 살짝 데쳐 먹는 샤부샤부로 봄 미식의 절정을 선사한다.이번 특선 메뉴들은 5월 31일까지 각 레스토랑에서 맛볼 수 있으며, 한식, 중식, 일식이라는 서로 다른 프리즘을 통해 봄이라는 계절이 얼마나 다채롭게 표현될 수 있는지 경험하는 특별한 기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