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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워서" 송언석 5·18 기념식 불참 논란…국힘 "서러워서" 해명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가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 불참 사유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부적절한 표현을 사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어 정치권에 파장이 일고 있다. 이번 논란은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야의 신경전이 고조되는 가운데 터져 나와 지역 비하 논란으로까지 번지는 양상이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18일 국회에서 열린 지방선거 관련 기자간담회 직후 진행된 비공개 티타임이었다. 당시 송 원내대표는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의 광주 기념식 참석과 관련한 질문에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겠다"며 본인은 "더러워서 안 간다"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 분위기를 언급하며 환영받지 못하는 장소에 갈 이유가 없다는 취지의 설명도 덧붙여진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보도가 확산되자 국민의힘 측은 즉각 사실무근이라며 반박에 나섰다. 원내대표실은 송 원내대표가 실제로는 '더러워서'가 아닌 '서러워서'라는 표현을 썼다고 해명했다. 과거 여당 지도부가 광주를 방문했을 때 일부 시민단체로부터 참배를 저지당했던 사례를 언급하며, 모두의 기념일임에도 환영받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발언을 호남에 대한 모욕으로 규정하고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정청래 대표는 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해당 발언을 언급하며 여당의 태도를 질타했고, 당 내부에서는 이번 해명이 과거의 음성 논란을 연상시킨다는 비꼬는 목소리도 나왔다. 야권은 진정성 있는 사과가 없을 경우 지방선거 국면에서 강력히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여권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감지되고 있다. 신지호 전 전략기획부총장 등 일부 인사들은 선거를 앞둔 예민한 시기에 불필요한 구설수가 발생한 것에 대해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반면 당 지도부는 비공개 대화 내용을 왜곡하여 보도한 매체에 대해 법적 조치를 검토하겠다며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당분간 진실 공방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송 원내대표는 논란이 된 광주 행사 대신 서울시청에서 열린 별도의 기념식에 참석해 헌화와 분향을 마쳤다. 같은 시각 광주 옛 전남도청 앞에서는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가 집결한 가운데 제46주년 기념식이 거행되었으며, 장동혁 대표는 일부 시민들의 항의 속에서도 근접 경호를 받으며 공식 일정을 소화했다.

 

윈난 지눠산, 300년 탄압 딛고 부활

기술을 통해 독자적인 공동체 문화를 유지해 왔다. 특히 지눠산은 과거 청나라 시절부터 보이차의 핵심 산지로 명성을 떨쳤으며, 이곳에서 생산되는 찻잎은 그 품질과 양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영광은 오히려 외부 세력의 질시를 불러일으켰고, 지눠족은 오랜 시간 동안 혹독한 수난의 역사를 감내해야 했다.지눠족의 기원에는 삼국시대 제갈공명과 관련된 흥미로운 전설이 서려 있다. 남만 정벌 당시 대열에서 이탈한 촉나라 병사들이 현지 토착민과 결합하여 형성된 민족이라는 설이다. 이 때문에 지눠족은 제갈공명을 단순한 정복자가 아닌 차 씨앗을 전해준 '차의 조상'으로 숭배하며 매년 차조회를 열어 경의를 표한다. 외부인을 배척하기보다 새로운 가족으로 받아들여 민족의 번영을 꾀했던 이들의 개방적인 태도는 씨족 내 혼인을 엄격히 금지하고 외지인과의 결합을 장려했던 독특한 혼인 풍습에서도 잘 드러난다.이들이 보유한 차 제조 기술은 현대 차 문화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 찻잎을 숯불에 구워 우려내는 '화소차'는 일본의 유명한 호지차보다 훨씬 앞선 전통을 자랑하며, 고온 로스팅을 통해 카페인 부담을 낮춘 것이 특징이다. 또한 찻잎을 달여 고체 형태로 만든 '차고'는 세계 최초의 인스턴트 차로 평가받을 만큼 혁신적인 기술력을 보여준다. 찻잎을 나물처럼 무쳐 먹는 '량반차' 습속은 차를 단순한 음료가 아닌 생존을 위한 식량으로 활용했던 소수민족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그러나 지눠족의 차 산업은 청나라의 가혹한 통치 아래 철저히 파괴되는 아픔을 겪었다. 18세기 한족 상인과의 갈등을 빌미로 시작된 청나라의 보복은 마을과 다원을 잿더미로 만들었고, 이후 약 177년 동안 지눠족의 독자적인 차 생산은 법적으로 금지되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땅에서 딴 찻잎을 인근 지역인 이우나 이방으로 보내야만 했으며, 그 과정에서 지눠산의 명성은 점차 퇴색되었다. 20세기 들어서도 전쟁과 내전의 화마를 피하지 못한 채 고귀한 차산은 화전민들의 터전으로 변하며 그 규모가 급격히 축소되었다.몰락의 길을 걷던 지눠족에게 반전의 기회가 찾아온 것은 20세기 말 보이차 열풍이 불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밀림 속에 방치되었던 수백 년 수령의 고차수들이 다시 발견되었고, 여기서 생산된 고수차가 시장에서 천문학적인 가격에 거래되기 시작했다. 300년 넘게 이어온 탄압과 빈곤의 사슬이 끊어지는 순간이었다. 지눠족은 자신들의 녹색 보물인 차나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며 경제적 자립을 꾀했고, 그 결과 2019년 윈난성 소수민족 중 가장 먼저 완전한 빈곤 퇴치를 달성하는 쾌거를 이루었다.현재 지눠산은 사통팔달의 도로망이 구축되어 외부와의 소통이 원활해졌으며, 아열대 기후의 이점을 살린 차 재배는 여전히 이들의 주된 수입원이다. 지눠족은 제갈공명의 탄생일에 풍등을 올리며 조상을 기리는 전통을 이어가는 동시에, 현대적인 차 가공 기술을 접목해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과거의 상처를 딛고 일어선 지눠족은 이제 윈난성을 대표하는 차 생산지로서의 위상을 회복하며, 자신들만의 독특한 토템 신앙과 문화를 보존한 채 지눠산의 안개 속에서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