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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명 울린 통일교의 '눈물의 4억'…해산 명령 앞두고 꼬리 내리나

 일본 사회를 뒤흔든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옛 통일교)이 드디어 빗장을 풀었다. 고액 헌금 문제로 논란의 중심에 섰던 통일교가 피해자 3명에게 총 5000만 엔(약 4억 8000만 원)을 지급하는 내용의 법원 민사 조정에 합의한 것이다. 이는 일본에서 통일교의 금전 문제와 관련해 법적 조정이 성립된 첫 사례로, 그동안 철옹성 같던 교단이 처음으로 책임을 인정한 셈이다. 피해자들을 지원해온 변호인단은 "포기하고 있던 많은 피해자들에게 구제의 길이 열렸다"며 이번 조정을 '거대한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꽉 막혀 있던 피해 보상의 물꼬가 트일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이번 승리를 이끈 것은 2022년 결성된 '가정연합 피해대책 변호인단'이다. 이들은 사람들의 불안감을 부추겨 고가의 물건을 사게 만드는 이른바 '영감상법' 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뭉쳤다. 변호인단은 교단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집단 교섭을 진행하는 동시에, 도쿄지방법원에 민사 조정을 신청하며 투트랙 전략을 사용해왔다. 이번에 조정이 성립된 3명 외에도, 현재 약 190명의 피해자가 60억 엔(약 570억 원)에 달하는 막대한 규모의 손해배상 및 위자료를 요구하며 법적 다툼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 첫 조정 성립이 현재 진행 중인 다른 소송들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일본 사회가 이토록 통일교 문제에 주목하게 된 계기는 2022년 7월 발생한 아베 신조 전 총리 피살 사건이었다. 범인은 자신의 어머니가 통일교에 거액을 헌금해 가정이 파탄 났고, 아베 전 총리가 통일교와 유착 관계에 있다고 믿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한 개인의 비극으로 끝날 뻔했던 통일교의 고액 헌금 문제가 이 사건을 계기로 일본 사회 전체를 뒤흔드는 거대한 스캔들로 비화된 것이다. 정치권과 종교의 어두운 연결고리가 드러나면서,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고 여론은 들끓었다.

 

사회적 파장이 커지자 일본 정부와 사법부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결국 도쿄지방법원은 지난 3월, 일본 정부의 청구를 받아들여 통일교에 대한 해산 명령을 내리는 초유의 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최소 1500명이 넘는 피해자와 204억 엔(약 2000억 원)에 이르는 피해액을 지적하며 "유례없이 막대한 피해"라고 질타했다. 물론 통일교 측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즉각 항고해 법적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이번 민사 조정 성립으로 교단 해산이라는 최종 판결을 향한 여론의 압박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윈난 지눠산, 300년 탄압 딛고 부활

기술을 통해 독자적인 공동체 문화를 유지해 왔다. 특히 지눠산은 과거 청나라 시절부터 보이차의 핵심 산지로 명성을 떨쳤으며, 이곳에서 생산되는 찻잎은 그 품질과 양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영광은 오히려 외부 세력의 질시를 불러일으켰고, 지눠족은 오랜 시간 동안 혹독한 수난의 역사를 감내해야 했다.지눠족의 기원에는 삼국시대 제갈공명과 관련된 흥미로운 전설이 서려 있다. 남만 정벌 당시 대열에서 이탈한 촉나라 병사들이 현지 토착민과 결합하여 형성된 민족이라는 설이다. 이 때문에 지눠족은 제갈공명을 단순한 정복자가 아닌 차 씨앗을 전해준 '차의 조상'으로 숭배하며 매년 차조회를 열어 경의를 표한다. 외부인을 배척하기보다 새로운 가족으로 받아들여 민족의 번영을 꾀했던 이들의 개방적인 태도는 씨족 내 혼인을 엄격히 금지하고 외지인과의 결합을 장려했던 독특한 혼인 풍습에서도 잘 드러난다.이들이 보유한 차 제조 기술은 현대 차 문화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 찻잎을 숯불에 구워 우려내는 '화소차'는 일본의 유명한 호지차보다 훨씬 앞선 전통을 자랑하며, 고온 로스팅을 통해 카페인 부담을 낮춘 것이 특징이다. 또한 찻잎을 달여 고체 형태로 만든 '차고'는 세계 최초의 인스턴트 차로 평가받을 만큼 혁신적인 기술력을 보여준다. 찻잎을 나물처럼 무쳐 먹는 '량반차' 습속은 차를 단순한 음료가 아닌 생존을 위한 식량으로 활용했던 소수민족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그러나 지눠족의 차 산업은 청나라의 가혹한 통치 아래 철저히 파괴되는 아픔을 겪었다. 18세기 한족 상인과의 갈등을 빌미로 시작된 청나라의 보복은 마을과 다원을 잿더미로 만들었고, 이후 약 177년 동안 지눠족의 독자적인 차 생산은 법적으로 금지되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땅에서 딴 찻잎을 인근 지역인 이우나 이방으로 보내야만 했으며, 그 과정에서 지눠산의 명성은 점차 퇴색되었다. 20세기 들어서도 전쟁과 내전의 화마를 피하지 못한 채 고귀한 차산은 화전민들의 터전으로 변하며 그 규모가 급격히 축소되었다.몰락의 길을 걷던 지눠족에게 반전의 기회가 찾아온 것은 20세기 말 보이차 열풍이 불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밀림 속에 방치되었던 수백 년 수령의 고차수들이 다시 발견되었고, 여기서 생산된 고수차가 시장에서 천문학적인 가격에 거래되기 시작했다. 300년 넘게 이어온 탄압과 빈곤의 사슬이 끊어지는 순간이었다. 지눠족은 자신들의 녹색 보물인 차나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며 경제적 자립을 꾀했고, 그 결과 2019년 윈난성 소수민족 중 가장 먼저 완전한 빈곤 퇴치를 달성하는 쾌거를 이루었다.현재 지눠산은 사통팔달의 도로망이 구축되어 외부와의 소통이 원활해졌으며, 아열대 기후의 이점을 살린 차 재배는 여전히 이들의 주된 수입원이다. 지눠족은 제갈공명의 탄생일에 풍등을 올리며 조상을 기리는 전통을 이어가는 동시에, 현대적인 차 가공 기술을 접목해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과거의 상처를 딛고 일어선 지눠족은 이제 윈난성을 대표하는 차 생산지로서의 위상을 회복하며, 자신들만의 독특한 토템 신앙과 문화를 보존한 채 지눠산의 안개 속에서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