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30억 아파트 살아도 받는다?…고유가 지원금 자산가 기준 '구멍'

 정부가 고유가 상황에 따른 서민 경제 부담을 덜기 위해 고유가 피해지원금 2차 지급에 돌입했으나, 선정 기준을 둘러싼 형평성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전체 국민의 약 70%인 3,600만 명을 대상으로 하는 이번 지원은 지급 첫날부터 탈락자들의 불만이 쏟아지며 술렁이는 모습이다. 특히 과거 민생회복 소비쿠폰을 받았던 이들 중 상당수가 이번에는 제외되면서 지급 문턱이 지나치게 높아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행정안전부의 설명에 따르면 이번 지원금은 고물가와 고유가 등 대외적 경제 위기에 대응할 여력이 부족한 계층을 집중 지원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정부는 전체의 20% 정도는 자력으로 상황 극복이 가능하다고 판단해 제외했다고 밝혔으나, 실제 수치상으로는 소비쿠폰 당시보다 수혜 인원이 1,000만 명 이상 급감했다. 이로 인해 '중산층의 기준'이 정부의 판단과 실제 체감 경기 사이에서 괴리를 보이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구체적인 선정 기준인 건강보험료 합산액을 살펴보면 지원 문턱이 대폭 상향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1인 가구 직장가입자의 경우 소비쿠폰 지급 당시에는 건보료 기준이 22만 원이었으나, 이번 고유가 지원금은 13만 원 이하로 대폭 낮아졌다. 이를 연봉으로 환산하면 약 7,300만 원 수준에서 4,340만 원 수준으로 급락한 셈이다. 성실하게 직장 생활을 하며 세금을 내온 평범한 직장인들이 대거 지원 대상에서 밀려나게 된 배경이다.

 

더 큰 문제는 고액 자산가 컷오프 기준이 일반 국민 기준 강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재산세 과세표준 12억 원이라는 기준은 시세로 환산할 경우 30억 원에서 40억 원대에 달하는 고가 주택 보유자도 포함될 수 있는 수준이다. 결과적으로 소득은 낮지만 수십억 원대 자산을 보유한 이들은 지원금을 받는 반면, 자산은 없어도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이 있는 직장인은 제외되는 역전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온라인 소상공인 커뮤니티와 직장인 익명 게시판에는 지원 비대상 통보를 받은 이들의 인증 글이 잇따르고 있다. 열심히 일해서 소득을 올린 것이 오히려 독이 되었다는 자조 섞인 반응부터, 실질적인 자산 규모를 반영하지 못하는 건보료 기준의 한계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물가 상승으로 실질 소득이 줄어든 상황에서 정부의 지원 사격마저 끊기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유권자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행정안전부는 건보료가 전 국민을 아우르는 가장 신속하고 현실적인 기준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당정협의와 예산 심의 과정을 거쳐 70%라는 범위를 설정했으며, 맞벌이와 1인 가구의 특수성을 반영해 기준을 설계했다는 설명이다. 정부는 선정 결과에 수긍하지 못하는 국민을 위해 별도의 이의신청 절차를 운영하겠다고 밝혔으나, 기준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윈난 지눠산, 300년 탄압 딛고 부활

기술을 통해 독자적인 공동체 문화를 유지해 왔다. 특히 지눠산은 과거 청나라 시절부터 보이차의 핵심 산지로 명성을 떨쳤으며, 이곳에서 생산되는 찻잎은 그 품질과 양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영광은 오히려 외부 세력의 질시를 불러일으켰고, 지눠족은 오랜 시간 동안 혹독한 수난의 역사를 감내해야 했다.지눠족의 기원에는 삼국시대 제갈공명과 관련된 흥미로운 전설이 서려 있다. 남만 정벌 당시 대열에서 이탈한 촉나라 병사들이 현지 토착민과 결합하여 형성된 민족이라는 설이다. 이 때문에 지눠족은 제갈공명을 단순한 정복자가 아닌 차 씨앗을 전해준 '차의 조상'으로 숭배하며 매년 차조회를 열어 경의를 표한다. 외부인을 배척하기보다 새로운 가족으로 받아들여 민족의 번영을 꾀했던 이들의 개방적인 태도는 씨족 내 혼인을 엄격히 금지하고 외지인과의 결합을 장려했던 독특한 혼인 풍습에서도 잘 드러난다.이들이 보유한 차 제조 기술은 현대 차 문화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 찻잎을 숯불에 구워 우려내는 '화소차'는 일본의 유명한 호지차보다 훨씬 앞선 전통을 자랑하며, 고온 로스팅을 통해 카페인 부담을 낮춘 것이 특징이다. 또한 찻잎을 달여 고체 형태로 만든 '차고'는 세계 최초의 인스턴트 차로 평가받을 만큼 혁신적인 기술력을 보여준다. 찻잎을 나물처럼 무쳐 먹는 '량반차' 습속은 차를 단순한 음료가 아닌 생존을 위한 식량으로 활용했던 소수민족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그러나 지눠족의 차 산업은 청나라의 가혹한 통치 아래 철저히 파괴되는 아픔을 겪었다. 18세기 한족 상인과의 갈등을 빌미로 시작된 청나라의 보복은 마을과 다원을 잿더미로 만들었고, 이후 약 177년 동안 지눠족의 독자적인 차 생산은 법적으로 금지되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땅에서 딴 찻잎을 인근 지역인 이우나 이방으로 보내야만 했으며, 그 과정에서 지눠산의 명성은 점차 퇴색되었다. 20세기 들어서도 전쟁과 내전의 화마를 피하지 못한 채 고귀한 차산은 화전민들의 터전으로 변하며 그 규모가 급격히 축소되었다.몰락의 길을 걷던 지눠족에게 반전의 기회가 찾아온 것은 20세기 말 보이차 열풍이 불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밀림 속에 방치되었던 수백 년 수령의 고차수들이 다시 발견되었고, 여기서 생산된 고수차가 시장에서 천문학적인 가격에 거래되기 시작했다. 300년 넘게 이어온 탄압과 빈곤의 사슬이 끊어지는 순간이었다. 지눠족은 자신들의 녹색 보물인 차나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며 경제적 자립을 꾀했고, 그 결과 2019년 윈난성 소수민족 중 가장 먼저 완전한 빈곤 퇴치를 달성하는 쾌거를 이루었다.현재 지눠산은 사통팔달의 도로망이 구축되어 외부와의 소통이 원활해졌으며, 아열대 기후의 이점을 살린 차 재배는 여전히 이들의 주된 수입원이다. 지눠족은 제갈공명의 탄생일에 풍등을 올리며 조상을 기리는 전통을 이어가는 동시에, 현대적인 차 가공 기술을 접목해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과거의 상처를 딛고 일어선 지눠족은 이제 윈난성을 대표하는 차 생산지로서의 위상을 회복하며, 자신들만의 독특한 토템 신앙과 문화를 보존한 채 지눠산의 안개 속에서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