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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분 자고도 '여신 미모' 뽐낸 장원영, 비결이 뭐길래?

 '아이돌 2회차'라는 별명이 무색하지 않은 완벽함의 대명사, 그룹 아이브의 멤버 장원영이 비현실적인 스케줄 속에서도 프로페셔널한 면모를 과시하며 팬들의 감탄과 우려를 동시에 자아내고 있다. 그녀가 직접 밝힌 스케줄은 '살인적'이라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로 가혹해, K팝 최정상 아이돌의 빛나는 무대 뒤에 숨겨진 고충을 짐작게 했다.

 

지난 1일, 다비치 강민경의 유튜브 채널 '걍밍경'에 출연한 장원영은 자신의 일상을 브이로그 형식으로 공개했다. "브이로그를 제대로 찍어본 적이 없다"며 수줍어하던 그녀의 입에서 나온 스케줄은 그야말로 충격적이었다.

 

장원영은 "뮤직비디오 촬영이 새벽 3시 30분쯤 끝났다"며, 이후 "50분 정도 눈을 붙였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단 한 시간도 채 못 자고 다시 메이크업을 받으며 다음 스케줄을 준비하는 모습은 보는 이들을 경악하게 했다. 그녀는 "오늘은 정신력이 중요한 하루"라며 스스로를 다잡았고, 심지어 "내일은 다시 베를린으로 출국한다"고 밝혀 숨 쉴 틈조차 없는 일정을 소화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그녀의 극한 스케줄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최근 화제가 된 군대 체험 예능 '전과자' 촬영 당시를 회상하며 "37도 폭염 속에서 바닥을 구르고 하늘다리도 건넜다"고 말해, 체력적 한계를 시험하는 스케줄을 끊임없이 소화해왔음을 알 수 있었다.

 

놀라운 것은 이 모든 고된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그녀의 비주얼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는 점이다. 50분의 짧은 수면에도 불구하고 카메라 앞에서 보여준 그녀의 빛나는 피부와 생기 넘치는 표정은 "역시 프로는 다르다"는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영상을 접한 누리꾼들은 "피부가 얼마나 좋으면 잠을 못 자도 저렇게 빛이 나냐", "인간이 아니라 AI가 아닐까 의심되는 수준", "건강한 미인의 표본이지만, 제발 잠은 재웠으면 좋겠다" 등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며 그녀의 프로 정신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한편으로는 건강에 대한 깊은 우려를 표했다.

 

'목장갑 거꾸로 끼기' 같은 소소한 허당미로 인간적인 매력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이번 고백으로 드러난 장원영의 초인적인 자기관리와 책임감은 그녀가 왜 '시대의 아이콘'으로 불리는지를 다시 한번 증명했다.

 

윈난 지눠산, 300년 탄압 딛고 부활

기술을 통해 독자적인 공동체 문화를 유지해 왔다. 특히 지눠산은 과거 청나라 시절부터 보이차의 핵심 산지로 명성을 떨쳤으며, 이곳에서 생산되는 찻잎은 그 품질과 양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영광은 오히려 외부 세력의 질시를 불러일으켰고, 지눠족은 오랜 시간 동안 혹독한 수난의 역사를 감내해야 했다.지눠족의 기원에는 삼국시대 제갈공명과 관련된 흥미로운 전설이 서려 있다. 남만 정벌 당시 대열에서 이탈한 촉나라 병사들이 현지 토착민과 결합하여 형성된 민족이라는 설이다. 이 때문에 지눠족은 제갈공명을 단순한 정복자가 아닌 차 씨앗을 전해준 '차의 조상'으로 숭배하며 매년 차조회를 열어 경의를 표한다. 외부인을 배척하기보다 새로운 가족으로 받아들여 민족의 번영을 꾀했던 이들의 개방적인 태도는 씨족 내 혼인을 엄격히 금지하고 외지인과의 결합을 장려했던 독특한 혼인 풍습에서도 잘 드러난다.이들이 보유한 차 제조 기술은 현대 차 문화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 찻잎을 숯불에 구워 우려내는 '화소차'는 일본의 유명한 호지차보다 훨씬 앞선 전통을 자랑하며, 고온 로스팅을 통해 카페인 부담을 낮춘 것이 특징이다. 또한 찻잎을 달여 고체 형태로 만든 '차고'는 세계 최초의 인스턴트 차로 평가받을 만큼 혁신적인 기술력을 보여준다. 찻잎을 나물처럼 무쳐 먹는 '량반차' 습속은 차를 단순한 음료가 아닌 생존을 위한 식량으로 활용했던 소수민족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그러나 지눠족의 차 산업은 청나라의 가혹한 통치 아래 철저히 파괴되는 아픔을 겪었다. 18세기 한족 상인과의 갈등을 빌미로 시작된 청나라의 보복은 마을과 다원을 잿더미로 만들었고, 이후 약 177년 동안 지눠족의 독자적인 차 생산은 법적으로 금지되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땅에서 딴 찻잎을 인근 지역인 이우나 이방으로 보내야만 했으며, 그 과정에서 지눠산의 명성은 점차 퇴색되었다. 20세기 들어서도 전쟁과 내전의 화마를 피하지 못한 채 고귀한 차산은 화전민들의 터전으로 변하며 그 규모가 급격히 축소되었다.몰락의 길을 걷던 지눠족에게 반전의 기회가 찾아온 것은 20세기 말 보이차 열풍이 불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밀림 속에 방치되었던 수백 년 수령의 고차수들이 다시 발견되었고, 여기서 생산된 고수차가 시장에서 천문학적인 가격에 거래되기 시작했다. 300년 넘게 이어온 탄압과 빈곤의 사슬이 끊어지는 순간이었다. 지눠족은 자신들의 녹색 보물인 차나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며 경제적 자립을 꾀했고, 그 결과 2019년 윈난성 소수민족 중 가장 먼저 완전한 빈곤 퇴치를 달성하는 쾌거를 이루었다.현재 지눠산은 사통팔달의 도로망이 구축되어 외부와의 소통이 원활해졌으며, 아열대 기후의 이점을 살린 차 재배는 여전히 이들의 주된 수입원이다. 지눠족은 제갈공명의 탄생일에 풍등을 올리며 조상을 기리는 전통을 이어가는 동시에, 현대적인 차 가공 기술을 접목해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과거의 상처를 딛고 일어선 지눠족은 이제 윈난성을 대표하는 차 생산지로서의 위상을 회복하며, 자신들만의 독특한 토템 신앙과 문화를 보존한 채 지눠산의 안개 속에서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