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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 정체성 논란에 입 열었다

 그룹 방탄소년단(BTS)을 둘러싸고 'K팝의 정체성'에 대한 논쟁이 불붙었다. 영국 BBC가 "방탄소년단이 K팝의 뿌리에서 너무 멀어지고 있는가"라는 비판적 질문을 던진 가운데, 방탄소년단과 방시혁 하이브 의장은 성공적인 결과물과 명확한 비전으로 이러한 우려가 기우임을 증명하고 있다.

 

BBC는 방탄소년단의 새 앨범 '아리랑'이 서구 작곡가들의 참여 비중이 높다는 점 등을 근거로, 이들이 독창성을 희생하며 서구 시장의 입맛에 맞추고 있다는 일부의 비판을 조명했다. 세계적 성공의 이면에서 그룹이 가진 한국적 정체성이 희석되고 있다는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지적과 달리, 방탄소년단은 그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한국 문화를 알려왔다. 해외 토크쇼에서 온돌 문화를 설명하고, 잡지 화보에서 직접 한국의 면 요리를 선보이는 등 자신들의 근간이 한국에 있음을 꾸준히 드러냈다. 멤버들 역시 영어가 능통한 리더 RM을 제외하고는 한국어 사용을 고수하며 정체성을 지키고 있다.

 

이들의 새로운 음악적 시도는 비판이 아닌 '커리어 하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새 앨범 '아리랑'과 타이틀곡 '스윔'은 빌보드의 양대 메인 차트를 동시에 석권했고, K팝 역사상 최대 규모의 월드투어를 앞두고 있다. 비평가들은 이를 '실험적 전환점'이라 부르며 이들의 음악적 진정성을 높이 평가했다.

 


방시혁 의장은 빌보드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러한 논란에 쐐기를 박았다. 그는 이번 앨범의 명확한 목표가 '보이밴드'라는 타이틀을 떼고 '진정한 아티스트'로 자리매김하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과거의 성공 공식에 안주하지 않고, 그룹 전체가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의도적인 선택이었다는 설명이다.

 

특히 방 의장은 타이틀곡의 안무를 거의 없앤 파격적인 변화에 대해 "당신들 같은 아티스트는 서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며, 과거의 강렬한 군무는 오히려 음악을 가린다"고 멤버들을 설득했다고 전했다. 이는 방탄소년단이 이제 퍼포먼스 중심의 아이돌을 넘어, 음악 그 자체로 승부하는 아티스트로의 완전한 진화를 선언했음을 보여준다.

 

윈난 지눠산, 300년 탄압 딛고 부활

기술을 통해 독자적인 공동체 문화를 유지해 왔다. 특히 지눠산은 과거 청나라 시절부터 보이차의 핵심 산지로 명성을 떨쳤으며, 이곳에서 생산되는 찻잎은 그 품질과 양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영광은 오히려 외부 세력의 질시를 불러일으켰고, 지눠족은 오랜 시간 동안 혹독한 수난의 역사를 감내해야 했다.지눠족의 기원에는 삼국시대 제갈공명과 관련된 흥미로운 전설이 서려 있다. 남만 정벌 당시 대열에서 이탈한 촉나라 병사들이 현지 토착민과 결합하여 형성된 민족이라는 설이다. 이 때문에 지눠족은 제갈공명을 단순한 정복자가 아닌 차 씨앗을 전해준 '차의 조상'으로 숭배하며 매년 차조회를 열어 경의를 표한다. 외부인을 배척하기보다 새로운 가족으로 받아들여 민족의 번영을 꾀했던 이들의 개방적인 태도는 씨족 내 혼인을 엄격히 금지하고 외지인과의 결합을 장려했던 독특한 혼인 풍습에서도 잘 드러난다.이들이 보유한 차 제조 기술은 현대 차 문화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 찻잎을 숯불에 구워 우려내는 '화소차'는 일본의 유명한 호지차보다 훨씬 앞선 전통을 자랑하며, 고온 로스팅을 통해 카페인 부담을 낮춘 것이 특징이다. 또한 찻잎을 달여 고체 형태로 만든 '차고'는 세계 최초의 인스턴트 차로 평가받을 만큼 혁신적인 기술력을 보여준다. 찻잎을 나물처럼 무쳐 먹는 '량반차' 습속은 차를 단순한 음료가 아닌 생존을 위한 식량으로 활용했던 소수민족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그러나 지눠족의 차 산업은 청나라의 가혹한 통치 아래 철저히 파괴되는 아픔을 겪었다. 18세기 한족 상인과의 갈등을 빌미로 시작된 청나라의 보복은 마을과 다원을 잿더미로 만들었고, 이후 약 177년 동안 지눠족의 독자적인 차 생산은 법적으로 금지되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땅에서 딴 찻잎을 인근 지역인 이우나 이방으로 보내야만 했으며, 그 과정에서 지눠산의 명성은 점차 퇴색되었다. 20세기 들어서도 전쟁과 내전의 화마를 피하지 못한 채 고귀한 차산은 화전민들의 터전으로 변하며 그 규모가 급격히 축소되었다.몰락의 길을 걷던 지눠족에게 반전의 기회가 찾아온 것은 20세기 말 보이차 열풍이 불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밀림 속에 방치되었던 수백 년 수령의 고차수들이 다시 발견되었고, 여기서 생산된 고수차가 시장에서 천문학적인 가격에 거래되기 시작했다. 300년 넘게 이어온 탄압과 빈곤의 사슬이 끊어지는 순간이었다. 지눠족은 자신들의 녹색 보물인 차나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며 경제적 자립을 꾀했고, 그 결과 2019년 윈난성 소수민족 중 가장 먼저 완전한 빈곤 퇴치를 달성하는 쾌거를 이루었다.현재 지눠산은 사통팔달의 도로망이 구축되어 외부와의 소통이 원활해졌으며, 아열대 기후의 이점을 살린 차 재배는 여전히 이들의 주된 수입원이다. 지눠족은 제갈공명의 탄생일에 풍등을 올리며 조상을 기리는 전통을 이어가는 동시에, 현대적인 차 가공 기술을 접목해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과거의 상처를 딛고 일어선 지눠족은 이제 윈난성을 대표하는 차 생산지로서의 위상을 회복하며, 자신들만의 독특한 토템 신앙과 문화를 보존한 채 지눠산의 안개 속에서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