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이슈

함양아 개인전, 사회 시스템과 인간을 묻다

 현대 사회가 직면한 복합적인 고통의 근원을 탐구해온 미디어 아티스트 함양아가 16년 만에 아트선재센터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작가가 지난 2018년부터 8년간 천착해온 예술 연구 프로젝트 '정의되지 않은 파노라마'의 궤적을 총망라하는 자리다. 함 작가는 신자유주의 제도의 형성 과정부터 금융 자본주의의 역사, 그리고 최근의 환경 위기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사회 시스템 안에서 개인이 겪는 실존적 고민을 다각도로 조명해왔다.

 

전시의 핵심을 이루는 신작 '정의되지 않은 파노라마 4.0'은 거대한 원형 스크린을 통해 압도적인 시각적 경험을 선사한다. 8채널 비디오로 구성된 이 영상 설치 작품은 금융 위기와 팬데믹 등 동시대가 마주한 거대한 변화의 물결 속에서 개인이 느끼는 몸의 감각과 서사를 22분간 펼쳐낸다. 작가는 관람객이 원형 구조 안에 들어섰을 때 마치 광장에 서 있는 듯한 공동체적 소속감을 느끼도록 설계했으며, 이를 통해 개인과 사회의 경계를 탐색하고자 했다.

 


또 다른 주목할 만한 신작 '듣는 화자, 말하는 타자'는 갈등이 심화된 이 시대에 '경청'의 가치를 묻는다. 세계 각지의 참여자들이 일상과 제도, 과학 기술 등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밝힌 영상들을 재구성한 이 작업은 작가가 제시한 '디지털 가드닝' 개념의 연장선에 있다. 파편화된 목소리들을 수집하고 가꾸는 과정을 통해, 작가는 타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행위가 현대 사회의 극심한 갈등을 치유하는 첫걸음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번 전시는 함양아 작가의 예술적 사유가 시작된 지점을 되짚어보는 기회이기도 하다. 2015년 작 '잠'은 2014년 한국 사회를 비극으로 몰아넣었던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제작된 작품이다. 일상적인 체육관 공간이 재난 상황에서 임시 대피소로 변모하는 과정을 포착한 이 영상은, 국가 시스템의 부재와 그 안에서 작동하는 사회적 기제들을 냉철하게 비춘다. 이는 작가가 이후 8년간 이어온 사회 시스템 탐구의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다.

 


전시장은 단순히 작품을 나열하는 공간을 넘어, 현대 사회의 불평등과 양극화 문제를 입체적으로 뜯어보는 거대한 연구실처럼 기능한다. 작가는 연필 드로잉 위에 인물 군상의 영상을 덧입히는 콜라주 기법을 통해 거시적인 사회 구조와 미시적인 개인의 삶을 유기적으로 연결한다. 2019년 발표된 '정의되지 않은 파노라마 2.0'이 제도적 모순에 집중했다면, 이번 4.0 버전은 인간의 신체와 감각으로 그 시야를 확장하며 더욱 깊어진 사유의 깊이를 보여준다.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는 이번 개인전은 함양아라는 작가가 오랫동안 축적해온 예술적 데이터와 철학적 질문들이 어떻게 진화해왔는지를 보여주는 보고서와 같다. 10월 4일까지 이어지는 전시는 관람객들에게 우리가 속한 사회 시스템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그리고 그 안에서 타인과 어떻게 연결될 것인지에 대한 묵직한 화두를 던진다. 작가가 8년간 길어 올린 파노라마 같은 영상들은 오늘날 우리가 마주한 정의되지 않은 세계를 이해하는 새로운 창이 될 것이다.

 

 

 

"BTS 굿즈 찾아 한국행" 리커머스 성지순례

이었다면, 이제는 절판된 앨범이나 희귀 포토카드를 구하기 위한 '리커머스(Re-commerce)' 쇼핑이 방한의 핵심 동기로 자리 잡았다. 아일랜드에서 온 한 관광객은 귀국 전 마지막 일정으로 중고 매장을 찾아 세븐틴의 예전 앨범을 구매하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이처럼 K-팝 팬덤의 중고 거래 시장은 내국인끼리의 취미를 넘어 글로벌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고부가가치 인바운드 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서울 마포구의 한 리커머스 매장은 방문객의 거의 전원이 외국인일 정도로 글로벌 팬들의 필수 코스가 되었다. 일본과 중국 등 인접 국가는 물론 독일, 프랑스 등 유럽 지역 팬들까지 이곳을 찾으면서 한 달 방문객만 1,000명을 상회한다. 5년 넘게 운영된 온라인 쇼핑몰의 인지도가 오프라인 매장으로 이어지며, 오직 이 가게를 방문하기 위해 한국 여행을 계획했다는 단골 고객도 적지 않다. 팬들이 SNS에 올린 구매 후기는 다시 전 세계 팬들에게 확산되며 새로운 관광객을 불러모으는 선순환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리커머스 시장이 공식 굿즈숍보다 인기를 끄는 이유는 빠른 트렌드 대응력과 희소성에 있다. 매장 관계자들은 글로벌 팬 커뮤니티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며 인기 그룹의 변동을 분석하고, 콘서트나 팝업스토어 현장에서 직접 물량을 확보한다. 최근 스트레이키즈 공연을 앞두고 관련 상품이 매진 사례를 빚은 것이 대표적이다. 특히 생산이 중단된 과거의 한정판 협업 제품이나 멤버들의 친필 사인이 담긴 앨범 등은 수십만 원에서 백만 원에 육박하는 가격에도 불구하고 팬들 사이에서 활발히 거래된다.이러한 소비 생태계는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행위를 넘어 팬들의 커뮤니티 공간으로 확장되고 있다. 매장 내부에 설치된 태블릿을 통해 원하는 포토카드를 검색하고, 서로의 수집품을 공유하며 정보를 나누는 모습은 흔한 풍경이 되었다. 팬들은 이곳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역사를 확인하고 다른 국가의 팬들과 교류하며 깊은 유대감을 느낀다. 리커머스 매장이 단순한 상점을 넘어 K-팝 문화를 향유하고 경험하는 하나의 문화적 거점이자 플랫폼 역할을 수행하게 된 셈이다.전문가들은 K-팝 리커머스가 관광과 수출을 동시에 견인하는 전략 산업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진단한다. 외국인 팬들이 한국에서 구매한 희귀 굿즈는 자국으로 돌아가 다시 현지 팬덤 내에서 유통되며 K-팝의 영향력을 지속시킨다. 이는 한국 여행의 목적성을 뚜렷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공연 전후의 부수적인 소비를 촉진하여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한다. 팬덤이라는 확실한 타겟층을 보유한 만큼, 리커머스 상품군을 다양화하고 관광 전략과 연계한다면 인바운드 시장의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다.결국 K-팝 리커머스의 부상은 글로벌 팬덤의 소비 방식이 소유를 넘어 가치와 경험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공식 판매처에서 구할 수 없는 '나만의 보물'을 찾아 한국의 골목 매장을 뒤지는 외국인들의 모습은 한류 관광의 패러다임 변화를 상징한다. 정부와 지자체 역시 이러한 변화를 주목하여 리커머스 매장을 관광 벨트의 일부로 포함하거나 외국인 쇼핑 편의를 지원하는 등 체계적인 육성 방안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K-팝이 만든 중고 거래 열풍은 이제 한국 관광의 지형도를 바꾸는 강력한 문화 권력으로 자리매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