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이슈

목소리로 짓는 무대, 국립극단 낭독 공연 개막

 화려한 무대 장치나 의상 없이 오직 배우의 목소리와 대본만으로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특별한 무대가 열린다. 국립극단은 이달 7일부터 22일까지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일본과 중국, 프랑스, 캐나다 퀘벡의 동시대 희곡 7편을 소개하는 낭독 공연 시리즈를 개최한다. 이번 행사는 민간 연극계가 오랜 시간 다져온 국제 교류의 결실이자, 한국과 프랑스의 수교 140주년을 기념해 국립극단이 해외 극작가 협회들과 손잡고 마련한 글로벌 연극 축제의 장이다.

 

공연의 포문은 일본 연극계의 권위 있는 상을 휩쓴 화제작들이 연다. 이치하라 사토코의 '바쿠스의 신녀-홀스타인 암소'는 젖소의 사육 방식과 인간 여성의 삶을 기묘하게 대조하며 자본주의 속 성의 통제 문제를 날카롭게 비판한다. 이어지는 가토 다쿠야의 '도도가 낙하한다'는 조현병을 앓는 코미디언의 사례를 통해 우리 사회가 규정한 '정상성'의 기준에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두 작품 모두 한국에서 처음 소개되는 무대로, 공연 직후 작가들이 직접 관객과 대화하는 시간도 마련되어 깊이 있는 소통을 예고한다.

 


중국 섹션에서는 과학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현대 사회의 부조리를 파헤친 SF 희곡들이 관객을 기다린다. 가오위안의 '역전된 미래'는 핵전쟁 이후 신체 개조가 특권이 된 기이한 법정 풍경을 그리며 차별의 아이러니를 고발한다. 쉬궈취안의 '73집 반 세입자의 마카오 기담'은 화려한 카지노 이면에 숨겨진 소시민들의 고단한 일상을 콜라주 기법으로 담아냈다. 류자오의 '파도가 밀려올 때'는 인공지능이 사별한 어머니를 대체하는 근미래를 배경으로 가족의 의미와 홀로서기의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시리즈의 대미는 프랑스어권의 서정적이고 철학적인 작품들이 장식한다. 장 브루나 파트리코의 '다리우스'는 오직 후각만 남은 장애 아들을 위해 조향사가 세상의 기억을 향기로 재현해가는 과정을 편지 형식으로 풀어낸 2인극이다. 파니 브리트의 '비앙베이앙스'는 캐나다 총독문학상 수상작으로, 변호사가 친구의 아이와 관련된 사건을 맡으며 겪는 심리적 갈등을 블랙코미디 형식으로 담았다. 선의의 본질과 가족 관계의 이면을 유머러스하면서도 묵직하게 파고드는 작품이다.

 


낭독 공연은 완성된 연극으로 가기 전의 중간 단계가 아니라, 텍스트가 가진 본연의 힘을 가장 순수하게 만날 수 있는 독립된 장르로 평가받는다. 관객들은 배우의 낭독을 들으며 머릿속으로 자신만의 무대를 그려나가는 능동적인 관람 경험을 하게 된다. 특히 이번 시리즈는 세계 각국의 동시대 작가들이 고민하는 지점들을 한자리에서 비교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자본주의, 정상성, 기술 발전, 가족 등 인류 공통의 화두가 각기 다른 문화권의 시선으로 어떻게 변주되는지 확인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국립극단은 이번 교류를 통해 국내 연극계의 지평을 넓히고 해외 우수 희곡의 도입 창구 역할을 강화하겠다는 방침이다. 1만 5천 원이라는 합리적인 티켓 가격은 일반 관객들이 낯선 해외 희곡에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문턱을 낮춰주었다. 텅 빈 무대 위에서 오직 언어의 힘만으로 구축될 일곱 개의 세계는 올여름 관객들에게 시각적 화려함보다 더 깊은 지적 자극과 감동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된다. 예매는 국립극단 홈페이지를 통해 가능하며 조기 매진이 예상된다.

 

"BTS 굿즈 찾아 한국행" 리커머스 성지순례

이었다면, 이제는 절판된 앨범이나 희귀 포토카드를 구하기 위한 '리커머스(Re-commerce)' 쇼핑이 방한의 핵심 동기로 자리 잡았다. 아일랜드에서 온 한 관광객은 귀국 전 마지막 일정으로 중고 매장을 찾아 세븐틴의 예전 앨범을 구매하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이처럼 K-팝 팬덤의 중고 거래 시장은 내국인끼리의 취미를 넘어 글로벌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고부가가치 인바운드 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서울 마포구의 한 리커머스 매장은 방문객의 거의 전원이 외국인일 정도로 글로벌 팬들의 필수 코스가 되었다. 일본과 중국 등 인접 국가는 물론 독일, 프랑스 등 유럽 지역 팬들까지 이곳을 찾으면서 한 달 방문객만 1,000명을 상회한다. 5년 넘게 운영된 온라인 쇼핑몰의 인지도가 오프라인 매장으로 이어지며, 오직 이 가게를 방문하기 위해 한국 여행을 계획했다는 단골 고객도 적지 않다. 팬들이 SNS에 올린 구매 후기는 다시 전 세계 팬들에게 확산되며 새로운 관광객을 불러모으는 선순환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리커머스 시장이 공식 굿즈숍보다 인기를 끄는 이유는 빠른 트렌드 대응력과 희소성에 있다. 매장 관계자들은 글로벌 팬 커뮤니티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며 인기 그룹의 변동을 분석하고, 콘서트나 팝업스토어 현장에서 직접 물량을 확보한다. 최근 스트레이키즈 공연을 앞두고 관련 상품이 매진 사례를 빚은 것이 대표적이다. 특히 생산이 중단된 과거의 한정판 협업 제품이나 멤버들의 친필 사인이 담긴 앨범 등은 수십만 원에서 백만 원에 육박하는 가격에도 불구하고 팬들 사이에서 활발히 거래된다.이러한 소비 생태계는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행위를 넘어 팬들의 커뮤니티 공간으로 확장되고 있다. 매장 내부에 설치된 태블릿을 통해 원하는 포토카드를 검색하고, 서로의 수집품을 공유하며 정보를 나누는 모습은 흔한 풍경이 되었다. 팬들은 이곳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역사를 확인하고 다른 국가의 팬들과 교류하며 깊은 유대감을 느낀다. 리커머스 매장이 단순한 상점을 넘어 K-팝 문화를 향유하고 경험하는 하나의 문화적 거점이자 플랫폼 역할을 수행하게 된 셈이다.전문가들은 K-팝 리커머스가 관광과 수출을 동시에 견인하는 전략 산업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진단한다. 외국인 팬들이 한국에서 구매한 희귀 굿즈는 자국으로 돌아가 다시 현지 팬덤 내에서 유통되며 K-팝의 영향력을 지속시킨다. 이는 한국 여행의 목적성을 뚜렷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공연 전후의 부수적인 소비를 촉진하여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기여한다. 팬덤이라는 확실한 타겟층을 보유한 만큼, 리커머스 상품군을 다양화하고 관광 전략과 연계한다면 인바운드 시장의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다.결국 K-팝 리커머스의 부상은 글로벌 팬덤의 소비 방식이 소유를 넘어 가치와 경험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공식 판매처에서 구할 수 없는 '나만의 보물'을 찾아 한국의 골목 매장을 뒤지는 외국인들의 모습은 한류 관광의 패러다임 변화를 상징한다. 정부와 지자체 역시 이러한 변화를 주목하여 리커머스 매장을 관광 벨트의 일부로 포함하거나 외국인 쇼핑 편의를 지원하는 등 체계적인 육성 방안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K-팝이 만든 중고 거래 열풍은 이제 한국 관광의 지형도를 바꾸는 강력한 문화 권력으로 자리매김했다.